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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L 법정관리 후에도 직원들 위기감 없다” 질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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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구조조정을 해야 할 기업에서도 인본주의 경영이 가능할까. 일본에서 ‘살아 있는 경영의 신(神)’으로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사진) 교세라 명예회장에게 쏠리는 관심사다. 그가 올 초 일본항공(JAL) 회장을 맡으면서다.

일본 재계에선 그가 JAL의 방만 경영을 어떻게 수술할지 주목해 왔다.

지난 1일 취임 한 달을 맞은 그는 JAL에서 과감한 속전속결식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매일 이른 아침 출근해 사업장을 시찰하거나 주요 부서에서 브리핑을 받으면서 꽉 찬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의 한 측근은 “78세라는 연령을 느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달 초 2700명의 조기 퇴직자 모집안을 최종 승인했다. 또 4월부터는 직원 급여를 5% 삭감하고, 보너스도 동결키로 하고 이런 방침을 2일 사내 8개 노조에 통보했다.

그는 당초 JAL의 경영정상화를 떠맡으면서 “최대한 일자리를 지키겠다”고 표명했다. 하지만 취임 1개월 만에 JAL의 방만한 실태를 확인하면서 구조조정의 칼을 휘두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작은 벤처기업이었던 교세라를 세계적 기업으로 키우면서 한 번도 인력을 감축해본 적이 없는 그도 JAL에 대해선 어쩔 도리가 없는 모양이다.

그는 최근 “법정관리 후에도 직원들에게 위기감이 없다는 느낌이 든다”며 JAL의 ‘오야가타 히노마루(親方日の丸)’ 정서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오야가타’는 부모님이고, ‘히노마루’는 일장기를 의미한다. 아무리 적자가 나도 정부가 부모님처럼 든든하게 지원해주기 때문에 현실에 안주하는 공기업 체질을 질타한 말이다.

JAL의 ‘조종’을 맡은 이나모리에겐 ‘비상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당장 고객 이탈이 문제다. 연말연시 국제선 이용 실적은 전일본항공(ANA)이 전년 대비 8.7% 증가한 데 비해 JAL은 11.8% 감소했다. 서비스 저하를 우려한 고객들이 경쟁사로 이동한 것이다. 올 3월 말 최종 적자는 2600억 엔으로 추산된다. 경영 합리화의 결정적 카드로 준비 중인 미국 아메리칸항공과의 항공 운영 통합도 낙관할 수 없다. 독점 금지를 중시하는 미국 정부가 제동을 걸면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경영 정상화의 지름길은 당초 방안대로 전체 직원의 30%를 넘는 1만5700명의 인원 정리가 될 전망이다. 이나모리가 취임 한 달 만에 조기 퇴직자 모집안을 내놓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JAL은 6월 말 구체적인 경영정상화 계획을 작성한 뒤 8월 말까지 법원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 마른 수건도 또 짠다는 각오다. 3월에는 육상부가 폐지되고 10월에는 여자농구부가 해체된다. 고액 연봉을 받는 파일럿의 승무 수당도 20% 이상 줄이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항공 수요의 본격 회복은 어렵고 지금도 매일 수억 엔의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 JAL의 시계는 앞으로도 한동안 ‘불량’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교세라에서 보여줬던 인본주의 경영은 한동안 뒤로 밀릴 가능성이 커졌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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