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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애니메이션 "창작만이 살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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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국산 애니메이션의 창작 열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한국애니메이션제작자협회(회장 김석기)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0년말 현재 기획 중이거나 제작에 들어간 국산 애니메이션은 90여편에 달한다. '돈키호테' (투니파크) '별주부 해로' (한신코퍼레이션) '원더풀 데이즈' (필름앤웍스) '하얀 마음 백구' (서울애니메이션) '힙합' (선민이미지픽처스)등 연내 개봉을 목표로 한 작품들도 상당수다.

주문자 상표부착 생산(OEM)방식 수출과 TV용.비디오.캐릭터상품 등을 포함한 전체 시장 규모도 1998년 7천6백여억원이던 것이 꾸준히 늘어 지난해 1조2천여억원을 기록했으며 올해엔 3년 전의 약 두 배인 1조5천여억원으로 예상된다.

너도나도 창작으로 몰려드는 데는 '하청 생산의 급감' 이라는 배경이 깔려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은 미국.일본 업계의 하청을 받으며 잔뼈가 굵었다. 그런데 90년대 말부터 중국이 새로운 'OEM의 강자' 로 떠올랐다.

그러면서 주 고객이던 미국과 일본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중국산이 품질도 우수한 데다 한국보다 30% 정도 싸기 때문. 지난해 OEM 수출 물량은 6천5백만달러로 98년 이래 계속 감소 추세다. 따라서 위기감을 느낀 국내 업체들이 "창작만이 살 길" 이라며 독자적인 기획 쪽으로 활로를 모색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열기는 '이상기류' 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관계자들의 진단이다. 무엇보다 연관산업으로 높은 파급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의 특성을 별로 고려하지 않은 주먹구구식 기획이 많다는 것이다.

부천카툰네트워크(PCN)의 권용훈 상무는 "기획 하나를 가지고 TV용.극장용.게임.캐릭터 등으로 키워나가는 '원 소스 멀티플 유즈(one source multiple use)' 를 고려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고 지적했다. 제작비 회수를 염두에 두지 않은 마구잡이식 제작은 결국 실패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최근 활발해진 외국과의 합작도 중요한 노하우는 배우지 못한 채 단순히 자본.기술만 제공받는 수준에 그쳐선 곤란하다는 지적이 많다. 가령 해외 시장으로 진출하려면 배급망 확보가 관건이라는 것. '돈키호테' 나 '아크' (DDS), '스페이스 제로' (PCN) 등은 투자.배급 확보를 위해 미국 업체들과 제휴한 예다.

'별주부 해로' 는 '트루 로맨스' '노스트라다무스' 등을 배급했던 CEO필름과 배급 계약을 하고 올 여름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 개봉할 예정이다.

'스페이스 제로' 의 경우 미국 폭스TV와 공동으로 기획했으며 미국 최대의 배급망 중 하나인 웨스턴 인터내셔널 신디케이션으로부터 배급 제안을 받은 상태다. '큐빅스' (대원 C&A.시네픽스)는 '포케몬' 을 배급한 미 서밋 미디어와 제휴했다.

이러한 합작물의 경우 3D가 대부분이라는 것은 주목할 만한 경향이다. 애니메이션의 종주국인 미국.일본에서도 아직 3D는 시작 단계라 위험 분산 등을 이유로 우리와 공동 작업을 원한다는 것이 업계측의 설명이다.

한국애니메이션제작자협회 이교정 전무는 "창작물의 증가는 시장 활성화라는 측면에서 일단 긍정적" 이라며 "마케팅 등 중장기적 전략이 불투명한 기획안은 살아남기 힘들다" 고 지적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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