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60년] 임진강을 넘어온 적 (46) 고등학생 김윤환(전 신한국당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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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전선의 상황이 급박해지면서 미군의 참전 규모도 날로 커졌다. 1950년 7월 말 부산에 도착한 미 해병대 병력을 환영하기 위해 국군 군악대가 연주를 하고 있다. [미 육군부 자료]

이 바람에 우리 1사단은 상주에서 낙동강을 건너 경북 선산군으로 들어갔다. 7000여 명의 병력으로 낙동강을 따라 41㎞나 되는 넓은 전선을 방어해야 했다. 낙동강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지역이었다. 강 동쪽으로 건너가 오상중학교에 사단 CP를 차렸다.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적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건너오지 못하게 막는 것이 우리 부대의 임무였다.

적은 8월 15일 광복절까지 이른바 ‘해방 전쟁’을 완수한다는 목표 아래 필사적인 공세를 펼쳤다. 야음을 틈타 모래주머니를 강바닥에 깔아 다리를 만들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그들이 앞세운 병력은 소위 ‘의용군(義勇軍)’이었다. 서울 등 남한 지역에서 강제로 징집한 사람들을 총알받이로 내세운 것이다. 그들에게 총구를 들이대고 집중 사격을 할 수밖에 없었으니 그 안타까움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세 배나 많은 병력과 10배의 화력을 앞세운 적의 공세는 강했다. 고전에 고전을 거듭하면서 겨우 낙동강을 지켜내고 있었다. 낮에는 그나마 미군의 공중 폭격 지원으로 버틸 만했다. 그러나 밤에는 뾰족한 대책이 따로 없었다.

전쟁 통에 늘 나를 괴롭혔던 말라리아가 발작했다. 낮에 찾아오는 오한으로 작전을 수행하기 힘들 정도였다. 몸져 드러눕고 말았다. 오상중학교 설립자인 김동석(4대 국회의원) 교장이 사택을 내줬다. 무더운 여름이라서 문을 열어 놓은 상태였다. 마당 한가운데에 있는 펌프 주위로 김 교장의 식구들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잠이 들었다.

고 김윤환 의원(1932~2003)

“저…, 죽 좀 드십시오.” 문 밖에 키가 훤칠하고 이목구비가 준수한 고등학생이 서 있었다. 내가 “누구신가?”라고 물었다. “이 집 아들입니다. 어머니가 사단장님께서 편찮으셔서 죽을 가져다 드리라고 했습니다.” 이름을 물었더니 학생은 “김윤환입니다”라고 또렷이 대답했다. 나중에 대통령을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다고 해서 ‘킹 메이커’로 이름을 떨쳤던 허주(虛舟) 김윤환이었다. 경북고등학교 2학년인가에 재학 중이라고 했다.

말라리아는 좀체 떠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그 방에 들어가 오들오들 떨었다. 오한이 나서 식욕이 통 없을 때마다 고등학생 김윤환군은 따뜻한 죽을 들고 찾아 왔다. 전선 지휘관을 격려해 주려는 김윤환군 집안 어른들의 배려가 고마웠다. 전쟁 통에 구하기 어려운 조기까지 챙겨줬다. 당시로서는 비싸고 귀한 장조림까지 만들어서 초라한 몰골의 국군 1사단장을 말 없이 격려하는 것이었다.

과묵하고 점잖은 인상을 줬던 이 학생이 어느 날 죽을 가져다 놓은 뒤 먼저 말을 건넸다. “저도 이제 군에 입대해서 싸우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아, 그래? 그럴 작정이면 아예 우리 1사단에 입대하는 게 어떨까.”

“받아주시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김군은 시원하게 대답했다. 나는 바로 사단 참모에게 연락을 해서 그를 입대시켰다. 국군 1사단의 포병대로 그를 보냈다. 그는 나중에 1사단이 낙동강 전선에서 반격에 나서 북진에 북진을 거듭할 때 함께 움직였다. 그도 1사단을 따라 역사적인 ‘평양 첫 입성’의 영광을 함께 누렸다.


35년이 흐른 85년 느닷없이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장군님, 저 기억하시겠습니까. 오상중학교 저희 집에서 뵀었던 김윤환입니다.” 반가운 목소리였다. 그는 당시 문화공보부 차관이었다.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그와 재회했다. 고등학생 때의 인상 그대로였지만 이미 나이가 제법 들어 있었다. 그 뒤에도 가끔 그와 마주칠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가족의 안부를 묻고는 했다. 그는 나중에 유명한 정치인이 됐다. 활발하게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정치인이었지만 내게는 늘 점잖고 예의 바른 ‘고등학생 김윤환’으로서의 인상이 더 강했다. 한참 일할 나이였던 2003년 그는 세상을 떴다. 조심스레 죽 쟁반을 든 채 문 앞에 조용히 서 있던 고등학생 김윤환. 그의 타계 소식을 듣고 먼저 떠오른 모습이었다.

백선엽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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