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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피치] 송진우의 당당한 야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지난해 프로야구 한화 선수들이 모자에 '16' 이라는 숫자를 새길 때 송진우(35)는 '1' 이라는 숫자를 새겼다.

'16' 은 시드니 올림픽 직전 현지훈련 도중 발목을 다친 팀 동료 송지만의 백넘버였다. '1' 은 동료 투수 이상목의 등번호였다. 투수진의 리더 송진우로서는 재활훈련 중인 이상목의 완쾌가 더 절실했던 것이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송진우는 새 모자에 '13' 이라는 숫자를 새겨넣을 참이다. '13' 은 그가 올해 목표로 삼고 있는 승수다.

그가 13승에 집착하는 이유는 13승을 보태면 선동열(은퇴)의 국내야구 통산 최다승 기록(1백46승)을 뛰어 넘는 최다승의 주인공이 되기 때문이다.

그의 구위로 볼 때, 서른다섯살의 나이로 볼 때 송진우가 선동열의 기록을 깨는 것은 부상만 없다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선동열이 일본으로 떠난 1996년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정민철(요미우리)이나 이대진(해태).염종석(롯데) 등이 새 기록의 주인공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송진우는 97, 98년 2년 연속 6승에 그쳐 선동열을 따라잡기는 힘들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정민철은 해외로 떠났고 이대진과 염종석은 부상으로 주춤거렸다. 반면 직구와 슬라이더만으로 버티기 힘들었던 내리막길에서 체인지업이라는 구세주를 만난 송진우는 99년 8승, 지난해 13승으로 다시 상승 곡선을 그렸다.

송진우의 기록이 대단한 것은 그가 92년과 지난해 시련을 딛고 일어섰다는 점이다. 91년 방위 입대했던 송진우는 군복무로 겨울훈련이 모자랐다.

하지만 92년 19승8패17세이브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당시로서는 최초로 다승왕과 구원왕을 동시 석권하는 '사건' 이었다. 그래도 그는 골든글러브상을 타지 못했다.

6 - 0으로 앞선 5회에 등판해 19승째를 챙겼으므로 '만들어준 다승왕' 이라는 비난과 함께 동국대 1년 후배 이강철(삼성.당시 해태 18승)의 다승왕을 빼앗아간 선배라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했다.

지난해 1월 그는 프로야구선수협의회 회장으로 뽑혀 또 한번 겨울훈련 부족의 시련을 겪었다. 남들보다 한달 늦은 5월에야 마운드에 올랐으나 13승(2패)을 올리며 승률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출발이 늦었던 만큼 엄청난 자제력과 뼈를 깎는 고통속에 쌓아올린 성적이었다.

그는 "선수협 활동을 통해 정신적 성숙이 야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깨달았다" 고 한다. 이때 남을 위해 헌신하는 송진우를 7년 전처럼 '후배의 타이틀이나 빼앗는 이기적인 선배' 로 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송진우는 두번의 시련을 딛고 일어섰다. 우수 선수들이 속속 해외로 진출하면서 한때 영원할 것처럼 보였던 선동열의 기록 앞에 선 송진우의 1백34승은 진정 당당하고 자랑스런 숫자다.

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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