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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 간부 암살극 파헤친 말브뤼노 기자의 집념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현실이 때로 영화 같을 때가 있다. 새해 벽두 중동에서 발생한 암살사건이 그렇다. 지난달 19일 두바이의 고급 호텔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고위 간부 마흐무드 알마부가 의문의 살해를 당했다. <중앙sunday 2월 14일자 8면> 본지 보도 이후 한국 언론은 연일 기사를 쏟아 내고 있다.

사건이 한 달 넘게 관심을 끄는 이유는 우선 엄청난 외교적 폭발력 때문이다. 영국·프랑스 등 5개국의 위조 여권이 사용돼 유럽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 여기에 007 첩보영화에서나 볼 만한 극적 요소들을 두루 갖췄다. 휘황찬란한 국제무역도시에 대규모 암살단이 당당하게 입국했고, 호화 호텔 객실에서 전기총과 독약을 사용해 사람을 죽였다. 더군다나 킬러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카메라에 생생하게 잡혀 마치 영화 장면 같은 볼거리를 제공했다.

비밀정보기관의 소행으로 보이는 이 사건을 외신을 통해 간접 취재하면서 기자는 충격적인 사실을 접했다. 각국 정보기관 간에 ‘어두운 거래’가 상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권위지 르피가로는 17일 웹사이트에 조르주 말브뤼노(47) 기자의 블로그 글을 실었다. ‘두바이에서 살해된 하마스 간부:정보전문가 두 명의 의견’이란 제목의 이 글에서 익명으로 인터뷰에 응한 정보세계의 거물들은 오랜 경험과 감각으로 사건의 배경을 짚어 냈다. 말브뤼노 기자는 르피가로의 대기자(Grand reporter)이자 간판 블로거다. 2004년 이라크에서 취재하다 저항세력에 납치돼 124일 만에 프랑스 정보기관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주인공이기도 하다.

정보전문가 A는 가정임을 전제로 “프랑스가 암살 배후로 지목받고 있는 모사드의 공범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암살 용의자가 사용한 프랑스 국적의 위조 여권을 만드는 과정에 프랑스 정보원들이 도와줬을 것이란 말도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각국 공항이 엄격하게 입국심사를 하는 마당에 가짜 여권이 발각되지 않기란 쉽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프랑스가 외교적 항의를 하고 ‘제재’를 취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지만 이 모든 게 프랑스와 이스라엘 사이에 이뤄지고 있는 ‘지하정치(politique souterraine)’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A가 말한 지하정치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사전에도 없는 이 말은 계속되는 A의 발언 속에서 큰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 A는 “얼마 전 모사드는 자신이 행한 다른 작전을 알리기 위해 우리에게 온 적이 있다”며 협력 사실을 털어놓았다. 정보전문가 B도 “두바이 사건은 프랑스 정보기관과 모사드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정보기관 차원에서 솔직한 해명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 다 양국 정보 당국의 ‘교류’를 인정한 셈이다. 결국 지하정치란 정보기관을 통해 이뤄지는 국가 간의 비밀스러운 거래 정도로 풀이된다. ‘공범’이란 용어까지 거리낌없이 사용한 걸 보면 문맥상 암살 같은 어두운 작전에 이뤄지는 협력을 염두에 둔 것 같다. 무고한 인질 구출이나 대테러전 협력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A는 프랑스가 이스라엘의 공범일 가능성을 가정의 영역에서 표현했으나 ‘두 나라가 지하정치를 하고 있다(se jouer·프랑스어로 ‘행해지다’는 뜻)’는 것은 현실 영역으로 인정했다.

A의 가정대로 프랑스가 이번 사건의 ‘공범’이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가정을 전제로 한 말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현실 속에 존재하는 지하정치가 이번 사건처럼 요인을 암살하는 데 적용될 개연성이다.

궁극적으로 보면 지하정치도 국익을 위한 행동이다. 그러나 그 수단으로 납치와 암살이 동원된다면 국제적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익이라는 것이 선악 판단까지 무시할 수 있는 절대 가치는 아니기 때문이다. 살인은 살인이다.

박경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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