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유창혁-야마다 기미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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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2승1패… 의지 불태우는 유창혁

제1보 (1~14)=하루 쉬고 14일, 그러니까 2000년 12월 14일, 자리에 앉은 劉9단의 표정은 엄숙하다.

2승1패. 나머지 두판 중 한판을 이기면 우승이니 아직은 넉넉해 보인다.

그러나 승부란 묘해서 2대2가 되면 분위기는 싹 달라지고 근심걱정 속에 찬바람이 휙휙 불게 된다.

그 고약한 기분을 맛보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흑을 쥔 이판에 끝장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며 劉9단은 이를 깨물고 있는 것이다.

5에 걸친 뒤 중국식을 펴는가 했으나 7의 눈목자. 그 다음 11에서도 다시 눈목자. 劉9단의 장기인 '눈목자 포석' 이 등장하고 있다. 미리 준비해온 듯 11까지 노타임으로 두고 있다.

야마다8단은 6에서 잠시 멈짓거렸을 뿐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동안에도 劉9단과 똑같은 템포로 척척 두어나가고 있었다. 막판에 몰렸지만 그걸 깨끗이 잊은 사람처럼 편해 보인다.

10분의 촬영시간이 지나자 모두들 떠났다. 적막해진 대국장에서 야마다8단은 망설임없이 12로 지키고 있다.

눈목자라면 '참고도' 처럼 삼삼에 파고든다는 것은 프로세계의 오래된 불문율이다. 그러나 14의 이색적인 공격수는 어느덧 일본까지 유명해진 유창혁의 수법이다.

이걸 잘 아는 야마다는 삼삼이라는 맛있는 떡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귀는 결국 흑의 수중에 넘어갔다.

14는 차분한 굳힘. 조훈현9단은 A에 응수타진할 기회라고 했는데 그런 빠르고 임기응변에 능한 수법을 야마다는 별로 즐기지 않는다. 흑의 다음 수는?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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