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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칼럼] 재테크가 아닌 재무 설계를 해야 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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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재테크 강의나 집필을 하기 시작한 지가 벌써 12년이 훌쩍 넘어섰다.

당시 강의 자료를 가만히 살펴보면 지금도 웃음이 나올 정도로 촌스럽고 어색하기가 그지 없다. 글자체나 색깔, 전체적인 강의 자료의 구성이 여간 아마추어 냄새가 많이 난다.

물론 지금도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10년 전 보다는 세련되고 나아 보인다.

그런데 당시 강의 자료를 가만히 살펴보면 한가지 공통된 방향성을 찾을 수가 있다.

‘저축’의 시대는 지나가고 있고 이제는 ‘투자’의 시대가 온다는 내용이다.

1997년 12월 3일 국가 경제가 어려워 지면서 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하면서 어수선하고 어려웠던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을 여실히 대변해 주고 있는 듯싶다.

은행도 망한다는 기존의 상식의 파괴를 겪으면서 이제는 은행의 정기예금이나 적금보다는 ‘투자’라는 매매를 통한 재산 증식을 해야 한다고 2000년대 초반까지 강의를 했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아예 고리타분한 내용이라거나 맞지 않는 내용은 아니지만 IMF외환 위기 이후 갑작스런 퇴직으로 인한 실업률 급증과 안전 자산에 대한 불안감이 상존하면서 단순 이자율에 의지하는 ‘저축’보다는 차라리 ‘투자’라는 표현의 수익 창출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2000년대 초반에는 경제가 회복되면서 저금리 기조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방향성은 어느 정도 잘 잡은 듯싶은데 이제는 다시 ‘재무 설계’라는 새로운 재테크 이상의 자산 관리 패러다임이 등장했다.

흔히들 ‘재테크’는 단편적이고 평면적이고 일시적,맹목적 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재무 설계’는 입체적이고 기간의 의미가 부여되고 목표 지향적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이러한 기간을 고려해야 하고 입체적으로 자산 관리를 해야 할까?

‘재테크’가 아닌 ‘재무 설계’라는 자산 관리의 방법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는 ‘금융 환경의 변화’가 그것이다.

예전에는 고객이 은행에 와서 여유 자금의 운용에 대해서 상담을 하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오히려 신변 잡다한 얘기를 주로 하고 실제 금융 상품에 대한 얘기는 간단히 끝낼 수 있었다.어차피 확정 금리에다가 거의 모든 상품에 비과세나 절세 혜택이 있었기 때문이다.원금 손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고 금융 상품에 가입할 때 그 자리에서 3년 후 혹은 5년 후에 아예 만기 해지 금액까지 조회를 해서 고객에게 드렸던 걸로 기억한다.

그만큼 금융 상품이 단조로웠고 간단한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2009년 초부터 시행된 자본시장 통합법으로 인해서 다양한 상품이 시장에 쏟아지는 것이 본격화 되고 금융기관 직원들 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복잡하고 헷갈리는 상품들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단순 이자율은 거의 없고 대부분의 상품들이 주식시장과 연동되거나 원자재,환율,선물 옵션 등의 파생 상품과도 연계가 되어 있어서 실제로 내가 가입한 상품의 정확한 수익률 구조를 이해하고 가입하는 사람들은 많지가 않다.

상품의 복잡 다양화가 진행되다 보니 상품에 대해서 가입할 때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고객의 투자 성향을 분석하고 성향에 맞는 상품을 구성하고 가입하기 까지가 한 시간 이상 소요되는 것이 당연시 되고 있는 요즘이다.

‘금융 환경의 변화’에서 또 하나의 변화는 바로 금융 상품별 위험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위에서 언급한 상품의 복잡 다양화되는 경향은 그렇다고 쳐도 한번 상품에 가입한 이후에도 시장의 흐름을 잘 살피지 않으면 하루가 다르게 돌발 변수나 악재들이 생기면서 수익률에 대해서 장담할 수 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저금리 시대의 실질 자산 가치의 하락과 맞물려서 단순히 여유 자금을 금융기관에 맡겨 두고 안심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시대가 지났기 때문에 ‘재무 설계’라는 입체적인 방법을 활용해서 가입 전의 시장 동향 파악과 투자에 대한 위험 요소 분석,본인의 성향 파악을 완벽하게 한 이후에 상품에 가입하고 또한 주기적인 재조정을 통해서 시간을 두고 자산 관리를 진행해야 하겠다.

단순 상품의 가입에서 끝나는 ‘재테크’가 아닌 ‘재무 설계’를 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가정 경제의 변화’이다.

IMF외환 위기에 수 만 명의 이 나라의 월급쟁이가 길거리로 내몰렸다.일단 회사에 입사만 하면 회사가 망하거나 내가 스스로 퇴직하지 않으면 버틸 수 있다는 인식이 고정관념으로 자리잡고 있었지만 당시의 경험을 한 이후로 기업들의 상시 명예 퇴직이나 구조 조정을 통한 인원 감축이 하나의 연례 행사로 자리 잡고 있어서 종신 고용제의 붕괴와 연공 서열의 파괴는 이제는 상식화 되어 버린지 오래 되었다.

40대대 중반만 되면 벌써 퇴직 이후를 고민해야 하고 은퇴 준비를 시작 해야 하는 조바심으로 안절 부절 못하는 많은 가장들의 모습이 주변에 흔한 모습이 되었고 여기에 기업들의 도산이나 부도도 심심찮게 발생하면서 자산의 운용이나 관리에 대해서 종목에 대한 분산이나 기간에 대한 분산 등이 중요한 투자의 요소로 자리잡게 되면서 가정경제에 일대 대 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높아만 가는 사교육비와 물가 상승률이 주부들의 주름살을 늘리고 있고 부동산 가격의 폭등을 여러 번 겪으면서 주거의 안정성도 크게 흔들리고 있는 최근의 모습이다. 따라서 단순하게 1년 후를 보는 투자가 아닌 3년,5년 아니 10년 이상의 장기적인 기간을 고려해야 하는 투자가 되어 버렸고 ‘재무 설계’를 통해서 현금 가치의 하락과 물가 상승률에 따른 비용 분석까지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후 생활의 변화’가 재무 설계의 시대로 접어든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평생 묵묵히 일만 열심히 하면서 월급에서 꼬박 꼬박 납부되는 국민 연금을 바라보면서 그래도 희망을 갖고 생활했던 우리의 부모님 세대에서는 그래도 노후 대비에 대한 부분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평균 수명의 연장과 물가 상승과 국민 연금 수혜 금액의 축소로 노후 준비에 대한 부분이 전체적인 삶 자체의 방향성을 변화시켰고 대부분의 사람들의 인생 목표이자 사회생활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은퇴 준비’라는 것으로 통일화 되고 있다.

아예 결혼의 의미가 두 사람의 30년 간의 노후를 준비하는 기간이라고 정의되고 있고 자녀에 대한 의존은 아예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매월 고정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사적 연금이나 부동산 임대 소득, 사업소득의 창출에 거의 모든 직장인들이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예전에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보면 마지막 장면에서 대도시로 상경해서 정착에 실패하면 짐 보따리 하나 싸서 쓸쓸하게 보여도 일단 기차 타고 내려갈 고향이 있었다.큰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고향에서 고향 사람들과 알콩달콩 살면 되지 라는 막연한 최후의 보루(???)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어디 그러한가? 고향 자체가 나에게 실패의 아픔과 슬픔을 준 대도시인데 어디로 가겠는가?

결론적으로 백화점이나 편의점에서 물건 하나 사듯이 자산 관리를 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물건을 사러 가기 전에 나의 생활 패턴이나 좋아하는 물건의 유형이나 당장 필요한 여부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가야 되고 물건을 사서도 이후에 나의 생활에 어떠한 도움을 주고 있고 그 물건이 나중에는 어떤 쓸모가 더 있을지를 늘 체크해야 한다.

만약에 더 이상 내게 쓸모가 없다고 여겨 지면 바로 다시 내다 팔거나 교환을 해서 그 시점에 내게 필요한 다른 물건으로 바꿔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재무 설계’의 마인드이고 실천 전략인 것이다.

서기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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