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 입구에 금줄을 두르고 그 사이마다 숯과 붉은 고추를 끼우는 것은 잡귀와 액운을 막기 위한 풍습이다.
순창=서정민 기자
‘장의 고장’ 순창 나들이
“항아리에 소금물을 부을 때는 이렇게 채 바구니에 얇고 고운 면포를 깐 다음 부어야 찌꺼기를 잘 거를 수 있어요.”
전북 순창에 사는 오순이(74) 할머니 집에 도착했을 때, 할머니는 마침 옹기 항아리에 소금물을 붓고 있었다. 할머니는 장연구가인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가 ‘전통 방식대로 장 담그는 집’이라고 소개한 사람이다. 14세부터 어머니를 도와 장을 담그기 시작했던 할머니는 13년 전부터는 ‘순창 오순이 전통식품’이라는 이름으로 장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1 흰색 버선본을 거꾸로 붙여 놓으면 잡귀는 물론 항아리 안으로 꼬이는 벌레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신 교수는 “예전에는 말날(午日·말의 날)에 주로 장을 담갔는데, 말은 털 달린 짐승 중 가장 피가 붉기 때문이었다”며 “예전엔 간장·된장이 썩는 이유가 잡귀가 붙어서라고 생각해 붉은 색으로 액막이를 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는 항아리에 버선 모양으로 오린 한지를 붙였다. 금줄과 마찬가지로 잡귀를 막기 위해서다. “버선목을 아래로 향하게 붙여 놓으면 장 항아리에 붙으려던 귀신이 막힌 코에 잡히거든요.” 하얀 색깔이 햇빛을 받아 빛나면 항아리 주위로 꼬이던 벌레들이 버선본으로 몰리게 된다는 것도 이유다.
“정월장이란 게 간장을 말하는데 과정이야 간단하지. 메주를 항아리에 차곡차곡 채우고 미리 풀어둔 소금물을 부으면 끝나요.”
2, 3 겨우내 새끼줄에 걸어두었던 메주를 장항아리로 옮겨 담고 있는 오순이 할머니.
장을 담그는 날보다 전날 준비가 더 분주하다. 잘 말려놓은 천일염을 물에 풀어두고, 항아리를 소독해 두어야 한다. 물에 씻고 햇볕에 말린 다음, 불 붙인 신문을 항아리에 넣고 엎었다 바로 세우면 항아리의 잡균이 사라진다고 한다.
[TIP] 따뜻해지기 전에 장 담가야 제맛 나죠
왜 음력 정월이 장 담그기에 좋은 때일까. 전통 장 연구가인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는 “가을 햇콩으로 쑤어서 겨우내 잘 말려둔 메주가 날이 따뜻해 썩기 전에 장을 담가야 맛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콩 발효에 적당한 미생물이 메주 표면에 붙고, 이게 서서히 메주 속으로 들어가 자라면서 효소를 만드는 게 장이 익어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따뜻할 때 일어나면 음식을 썩게 하는 균이 먼저 활동해 메주를 못 쓰게 만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