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한 집’의 희로애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19면

<8강전 2국> ○·저우루이양 5단 ●·이창호 9단

제17보(217~230)=전보 백△와 같은 수가 왜 나오느냐. 이게 바로 대국심리가 지닌 미스터리다. 백△는 척 형태로만 봐도 공배의 느낌이 강하게 풍기는 수다(실제 A로 끊기면 바로 공배가 된다). 한데 간발의 차이로 앞서 있는 국면에서 그런 위험한 수를 둔다는 것은 어떤 이유를 대도 도무지 설명이 안 된다. 더구나 저우루이양은 이 판에서 목격했듯 얼마나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기사인가.

바둑은 불리해도 문제지만 유리해도 문제다. 말하자면 축구의 ‘골 결정력’ 같은 것이다. 기막힌 솜씨도 수많은 수비수를 제치고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을 만들었는데 바로 그때 실축이 나온다. 더구나 ‘이창호’ 같은 태산북두가 앞에 앉아 있으면 ‘나도 모르는’ 이상한 수가 나오고 만다.

백△로 인해 바둑은 다시 한번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창호가 졌다”가 “모른다”로 변했고 이겼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이런 역전 무드에 찬물을 끼얹는 수가 등장한다. 바로 229. 이 수는 ‘참고도 1’ 흑1에 먼저 두는 게 수순이다. 백2는 3을 당하니까 둘 수 없다. 결국 ‘참고도 2’ 백2인데 그때 3으로 이으면 선수다(흑B 다음 C로 조이는 끝내기가 커서 받아야 한다). 실전과는 한 집 차이다.

‘한 집’을 놓고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고 있다. 길고 긴 종반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