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속 수출 2000억불 시대] 수출 주력상품 1964년 물고기·옷→반도체·차 2004

'어류.합판.옷감.철광석.의류' 대 '반도체.휴대전화.자동차.컴퓨터.선박'. 우리나라가 총 수출액 1억달러의 고개를 간신히 넘던 1964년과 그로부터 2000배를 넘어선 오늘날의 5대 수출 품목이 뚜렷이 대비된다. 물고기나 광물 아니면 가발.신발 같은 단순 임가공품 정도였던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품목이 40년 만에 첨단 정보기술(IT) 제품과 중후장대형 산업 제품으로 탈바꿈했다.

◆2000배 성장의 이력서=수출품목의 질적 비약과 더불어 양적 성장 면에서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 1억달러가 10억달러가 되는 데 7년, 10억달러가 100억달러가 되는 데 6년 걸렸던 것은 지금까지도 세계 신기록으로 남아있다. 100억달러가 1000억달러가 되는 데 18년, 그리고 2000억달러 고지를 밟는 데 9년이 각각 걸렸다. 이들 기간을 통틀어 한국의 연평균 수출 증가율은 21%에 달했다. 세계 20대 수출국 가운데 가장 높다. 수출 대국인 대만과 중국도 같은 기간 각각 16%, 14%의 연평균 증가율을 기록했을 뿐이다.

수출액 순위는 64년 90위에서 77년(100억달러 달성) 20위권에 진입했고 지난해(1938억달러)엔 12위에 올랐다. 그동안 세계시장 점유율은 0.07%에서 2.6%로 뛰었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올해는 홍콩을 따라잡아 세계 11위로 한 계단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한국이 시대별로 키재기 경쟁을 벌였던 나라들을 보면 금석지감이 든다. 64년의 수출액 순위 경쟁국은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모잠비크였다. 71년(10억달러 달성)에는 포르투갈.필리핀, 77년에는 덴마크.스페인으로 바뀌었다. 지난해에는 벨기에(10위).홍콩(11위).멕시코(13위) 등이 새로운 경쟁국이 됐다.

'세계경제의 황금기'라는 60년대를 제외하면 순탄한 시절이 그리 길지 않았다. 70년대는 두 차례의 오일쇼크가 있었고 80년대에는 보호무역주의가 만연했다. 90년대에도 지역주의와 중국의 등장으로 선발 무역국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산업자원부 관계자는 "40년 전 우리 수준(1억달러대)의 수출국 가운데 절대빈곤에서 벗어난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말했다.

◆수출구조 고도화=수출 구조도 양적.질적 변모를 겪었다. 수출 품목 수는 712개(65년)에서 8090개(올해)로 11배로 늘고, 무역업체 수가 708개(65년)에서 9만1411개(올해)로 130여배 급증하는 동안 수출구조도 꾸준히 고도화됐다.

60, 70년대에는 섬유.가발 등 노동집약적 경공업 제품이 주종이었다. 90년대 들어 반도체.자동차.휴대전화 같은 첨단제품이 상위권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64년에는 어패류.합판이, 70년대에는 의류 등이 주력이었지만 정부 의지에 따라 80년대엔 중화학제품 수출 비중이 크게 늘었다.

반도체는 10년 넘게 우리나라 최대 수출품목의 자리를 굳혔다. 무선통신기기의 수출도 급격히 늘어 자동차를 제치고 2위 자리를 차지했다. 이에 따라 메모리 반도체와 휴대전화 분야에서 각각 세계 1, 3위를 확보한 삼성전자는 일개 회사로 올 들어 한국 수출의 16.7%를 점하기에 이르렀다.

수출품의 구조 변화에 비해 수출 상대국의 편중 현상은 상당기간 변하지 않았다. 60, 70년대에는 미국.일본을 합친 수출 비중이 절반 이상(50~70%)이었다. 90년대가 돼서야 중국.대만.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등으로 다변화하면서 그 비중이 30%대로 줄었다. 올 들어 중국은 미국 대신에 한국의 최대 수출국으로 떠올랐다. 다만 수출 대상국 수는 64년 41개에서 올해 229개로 5.6배 늘었다. 올해 개도국에 대한 수출비중(58%)이 선진국(42%)을 훨씬 웃돈 것도 수출시장 다변화의 청신호다.

한국무역협회의 현오석 무역연구소장은 "개도국 수출이 늘어난다는 것은 선진국에 대한 완성 소비재 수출 구조에서 벗어나 덜 산업화된 나라에 대한 부품.소재 수출이 는다는 뜻으로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홍승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