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1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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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17. 부실기업 정리 원칙

극동건설 김용산(金用山) 회장이 다녀간 뒤 나는 재무부 직원들에게 그가 한 얘기를 그대로 전달하고 주의를 환기시켰다.

장관에게 손을 뻗치는 사람들이라면 다른 관련 공무원들에게도 손을 내밀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 부실 기업 관계자와의 면담 때 배석자가 작성한 장관 면담록을 해당 과에 비치하도록 지시했다.

14년여 전 김회장에게서 그런 폭언을 들은 것은 26년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나로서는 최대의 모욕이었다. 당시 나는 언젠가는 이 일을 밝히겠다고 마음 먹었다.

직무를 제대로 수행한 공직자가 모멸감을 느끼는 일은 이제 우리 공직사회에서 사라졌으리라 믿고 싶다.

극동건설이 인수한 동서증권은 그 후 퇴출됐고, 극동건설은 지금 관리종목에 편입돼 있다. 부실 기업이 부실의 늪에서 헤어나기란 이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당시 부실 기업들이 부실화한 사실이 드러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해당 기업의 기업주가 찾아와 "살려달라" 고 했기 때문이었다.

부실기업주의 입을 통해 해당 기업이 부실 기업임이 확인된 셈이다. 이들은 부실 규모가 크다고 하면 지원해 주지 않을까 봐 "큰 돈은 들어가지 않는다" 고 말했다.

그러나 실상 추가 지원을 하다 보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였다. 기업주가 몇 백억원이면 회생할 수 있다던 대한선주의 경우 외환은행이 파악한 누적결손은 1986년 11월 현재 6천억원에 달했다.

내가 강력한 실사팀을 만들어 부실의 실태에 대해 철저히 실사를 벌인 것은 이 때문이다. 실사팀이 투입되면 부실 규모가 낱낱이 드러났다.

국제그룹 해체 전야 국제 추가 지원에 처음으로 이의를 제기한 것도 나였다.

당시 김만제(金滿堤) 재무장관(현 한나라당 의원)과 재무부 이재국장은 번갈아가며 거의 매일 은행에 전화를 걸어 국제 어음의 부도를 막아 달라고 당부했다.

훗날 국제그룹 해체 문제로 피소 당한 김장관이 "나는 억울하다" 고 한 데는 이런 배경도 작용했을 것이다.

국제그룹의 부도를 막아 달라고 할 때마다 나는 "언제까지 예금자의 돈을 질러 넣을 거냐" 고 물었다.

나중엔 "은행장으로서 배임에 해당한다" 며 더는 지원을 못하겠다고 버텼다.

"정부가 나서 대책을 수립하고 정리 과정에서 우리 은행의 몫이 정해지면 그건 지원하겠노라" 고 했다.

외환은행장 시절 이래 부실 기업 정리를 하며 나는 스스로 정한 세 가지 기준에 따랐다.

첫째, 원칙을 예외 없이 적용한다.

둘째, 모든 처리는 합법적으로 한다.

셋째, 돈을 절대 받지 않는다.

당시 내 주위엔 '구름 잡는 얘기' 라며 기준은 만들어 뭐하느냐는 사람들도 있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나는 이들에게 기준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또 부실 기업 정리는 언제고 반드시 한 번은 말썽이 나게 돼 있다고 말했다.

" '이 죽일 놈들이…' 하며 잡아 넣을 겁니다. 정치적 해결의 정석이지요. 은행장이 아무리 형무소 담 위를 걸어가는 직업이라지만 돈 안 먹고 합법적으로 처리하면 감옥 가는 건 피할 수 있어요. "

나는 내 밑의 직원들에게도 절대 돈을 받지 말라고 강조했다.

83년 7월 경제기획원을 떠나 외환은행장으로 자리를 옮길 때 김준성(金埈成) 부총리가 인사하러 간 내게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밑에서 돈을 받더라도 은행장만 안 받으면 탈이 안 생깁니다. 내 말 명심하시오. "

재무장관 시절인 86년 6월엔 '부실기업 정리 원칙' 을 작성했다. 내가 직접 구술하고 재무부 직원이 받아 적었다.

정인용 前경제부총리

정리〓이필재 이코노미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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