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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참된 기쁨 잔잔히 되새긴 영화 '초콜릿'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열두 살 개구쟁이의 성장 과정을 풋풋하게 그린 '개 같은 내 인생' 으로 유명한 스웨덴 출신의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초콜릿' 은 일단 소재가 새로운 영화다.

어린 아이나 연인들이 즐겨 먹는 초콜릿을 빌려 세상사의 부조리를 풍자한 우화 같은 작품으로 우리가 얼마나 사랑을 잊고 살아가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영화의 배경은 멀지 않은 과거의 한 프랑스 시골마을. 1백년 동안 달라진 게 거의 없는 한적한 곳이다.

부활절을 앞둔 사순절(기독교인이 예수의 부활을 기다리며 금욕적 생활을 하는 기간)의 어느날 이곳에 이방인이 찾아든다. 눈보라 속에 빨간 망토를 뒤집어쓰고 나타난 여인(쥘리에트 비노슈)과 그의 딸이다.

여인은 마을 사람들이 그 전에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과자를 만들어낸다. 바로 초콜릿이다. 영화는 이 초콜릿을 둘러싸고 빚어지는 여러 인간의 갈등을 촘촘하게 보여준다.

갈등의 중심인물은 여인과 마을시장. 초콜릿을 마을의 질서와 종교를 위협하는 '악' 으로 여기는 시장과 마을사람의 이런 저런 상처를 초콜릿의 달콤한 맛으로 달래주는 여인의 대립구도가 작품을 끌고간다.

시장이 화석화한 종교 혹은 윤리를 대변한다면 여인은 인간의 열정 혹은 육체의 소중함을 상징한다.

여기에 방랑생활을 즐기는 집시(조니 뎁)와 여인의 사랑이 겹쳐지면서 인생의 참된 기쁨은 과연 무엇인가를 캐고 있다.

'퐁네프의 연인들' 에서 인상적인 연기가 기억에 남는 비노슈가 이번엔 상큼하면서도 신비스런 연기를 선보인다.

소재가 된 초콜릿처럼 영화는 비교적 잔잔하고 부드럽게 흘러간다. 타인에 대한 관용이라는 주제가 너무 선명해 한 편의 동화를 읽는 느낌이다.

기막힌 반전, 시원한 액션을 배제해 삶의 의미를 처음부터 별다른 부담없이 돌아보게 한다.

올해 베를리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작품으로 아카데미상에도 여우주연상 등 5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24일 개봉.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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