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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美·日 아닌 제3의 경제 모델을 찾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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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손턴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이사장은 한국 정부와 기업이 중국 리더들을 잘 알지 못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들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중국의 차세대 리더들은 인생의 쓴맛을 경험한 비범한 인재들이다.”
존 손턴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이사장의 평이다. 그는 중국 명문 칭화대의 글로벌 리더십 과정 지도교수(디렉터)이기도 하다. 미국·유럽에서 그는 최고의 중국 지도부 분석가로 꼽힌다. 그가 지난주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가 연 국제회의 ‘글로벌 코리아 2010’에 참석했다. 중앙SUNDAY는 그를 만나 요즘 세계의 관심사로 떠오른 중국 리더들의 특성 등을 들어봤다.

중국 공산당이 칭화대 교수로 초청
-그들의 문제해결 능력은 어느 정도일까.
“먼저 중국이라는 나라를 살펴보자. 첨단과 중세, 번영과 빈곤이 공존하고 있다. 10여 개 나라에 둘러싸여 있다. 무수한 현안이 발생하고 있기도 하다. 세계의 현안들이 중국이 안고 있는 문제보다 복잡하다고 말하기 힘들다.”

-그래서 물어본 것이다.
“중국 리더들, 특히 경제정책 책임자들은 현재 업무를 20년 정도 수행했다. 많은 위기와 현안에 대응하면서 지금 자리에 올랐다. 그들은 능력을 중시하면서도 점진적으로 승진하는 시스템에서 성장했다. 미국의 벤 버냉키처럼 학자로 있다가 갑자기 중앙은행 책임자가 된 사람은 없다.”

-그들의 능력을 미국 리더들과 견줘볼 수 있을까.
“능력·경험만을 놓고 보면 베이징 리더들은 현재 다른 나라 지도자들 이상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뚜렷한 국정 경험 없이 리더가 됐지 않았는가?(웃음)”

- 그들이 빠르게 변하는 경제를 잘 관리할 것 같은가.
“중국에서는 모든 영역이 너무나 빠르게 변한다. 변화의 속도는 중국 리더들에게 큰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문제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잘 관리할 것으로 본다.

손턴은 세계 최대 투자은행인 골드먼삭스 2인자(COO)였다가 2003년 중국 칭화대 교수로 변신했다. 외국인으로선 처음으로 중국 공산당의 지지를 받고 교수가 됐다. 중국 지도부를 비판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공격적으로 질문하기 위해 또 다른 중국 전문가인 수전 셔크 전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말을 인용했다. 그는 2007년 중앙SUNDAY와 인터뷰에서 “중국 지도부는 대외적으론 강하지만 내부에서는 쉽게 흔들린다”며 “긴축 등 고통스러운 정책을 쓰지 못해 거품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손턴은 “셔크의 분석력을 아주 높이 평가하지만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중국인들이 못살던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지금처럼 살게 해준 베이징 지도부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고, 지도부의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헤지펀드 귀재’인 조지 소로스는 최근 홍콩대 강연에서 중국 리더들이 글로벌 책임을 감당할 준비가 안 돼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내부 문제가 너무나 크고 복잡하다. 베이징 지도부는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국제 문제에 말려들지 않으려 한다. 미국과 함께 G2의 한 축이 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20세기 초 미국 고립주의자들과 비슷하지 않은가.
“맞다. 미국 먼로주의자들처럼 중국 리더들은 글로벌 책임을 적극적으로 떠안으려 하지 않는다. 중국이 그리스에 자금을 지원해 부채 위기를 해결하려 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베이징은 ‘유럽 문제는 유럽인들이 알아서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나중에 적극적으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지금 20~30대 젊은이들이 리더의 반열에 오르면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하려고 할 듯하다. 그들은 경제발전이 낳은 기회를 만끽하고 있다. 그들은 현대적이며 글로벌 이슈에 관심이 많다.”

손턴이 차세대 지도자들을 이야기하자 2012년 가을에 열릴 중국 공산당대회가 궁금해졌다. 후진타오 국가주석 후임이 선출되기 때문이다. 그해 12월 한국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거의 동시에 두 나라에서 새로운 리더들이 등장하는 셈이다.

-2012년 이후 중국 리더는 누구일까.
“마오쩌둥→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에 이어 5세대 리더들이 부상한다. 시진핑·리커창 등 후보군이 이미 드러났다.”

-그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그들은 문화혁명 세대다. 중앙에서 쫓겨나 산간벽지 생활(하방)을 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10년 정도 농촌에서 생활한 뒤 성인이 돼 베이징으로 복귀했다.”

-낮은 곳에서 단련됐다는 말인가.
“그뿐 아니다. 그들은 하방에서 풀려난 뒤 중국 역사상 가장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학에 들어가 고등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하방이라는 인생의 쓴맛과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감을 맛봐 의무감·성취 동기뿐 아니라 비범한 능력을 갖췄다.”

-그들이 이끌면 중국이 어떻게 바뀔까.
“아직 말하기 이르다. 그들은 마음속에 품고 있는 비전이나 계획 등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들이 이끌 10년(2012~2022년)은 현대 중국의 진화 과정에서 아주 흥미로운 시대가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손턴은 투자은행가 출신이다. 그는 1990년대 골드먼삭스가 중국 채권을 인수해 글로벌 시장에 소개하는 데 앞장섰다. 저우샤오찬 중국 인민은행 총재 등 경제정책 책임자들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갖췄다. 중국 경제정책 담당자들이 미래 모습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를 물었다.

-중국이 20~30년 뒤 미국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현재 경제정책 책임자 가운데 한 명이 2년 전 내게 ‘중국인 13억 명이 현재 미국 같은 소비를 한다면 세계 자원 문제는 어떻게 될 것 같은가?’라고 물은 뒤 ‘혁명적인 기술혁신이 없는 한 지구는 미래 중국의 석유나 석탄, 철강, 식수 등의 소비를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그의 말이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일본처럼 호황과 버블을 겪다 장기 침체에 빠진다는 우려도 있다.
“미국이 대공황을 겪은 것처럼 중국도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은 서부라는 미개척지가 있다. 시장이 포화상태를 보이지 않을 것이다. 또 중국 경제정책 담당자들의 문제해결 능력이라면 경제가 일본처럼 장기불황에 빠지도록 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도 일본도 아니라면 중국 경제의 미래는 무엇일까.
“그들도 아직 풀지 못한 숙제다. 그들 스스로 ‘제3의 길’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여전히 빈 괄호다.”

손턴은 미 집권당인 민주당 쪽 사람이다. 버락 오바마 정부의 대중(對中) 전략·정책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 정부와 기업의 대중 전략 등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한국은 중국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한국 정부나 기업은 미국 쪽과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중국 리더들을 깊이 알지 못하고 있다. 그들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 베이징과의 관계도 지금보다 훨씬 강화해야 한다.”

-중국과 너무 가까워지면 미국과의 관계가 나빠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한국이 중국과 긴밀해질수록 미국과 관계도 좋아진다. 또 일본은 상당 기간 중국인들의 신뢰를 얻지 못할 것이다. 한국 정부나 기업이 그 틈을 이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올해 한국이 주요 20개국(G20) 회의 의장국이다.
“중국 리더들이 소극적이어서 G2 체제로 글로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G20이 좋은 대안이다. 금융위기가 낳은 긍정적인 변화 가운데 하나다. 단 너무 야심 차면 실패하기 십상이다. 금융개혁, 에너지 효율성, 일자리 창출 등에 집중해야 한다. 의장국인 한국이 현실적이며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면 중요한 업적으로 남을 것이다.”

강남규(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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