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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은행 사건은 권력형 비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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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빛은행 불법대출 사건 관련 피고인들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예상보다 중형을 선고했다.검찰의 구형량과 비슷한 중형이었다.

이는 이 사건의 파행성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이 심각함을 말해준다.

재판부는 실제로 이번 사건을 “법보다 권력이 앞서는 권력만능주의,원칙보다는 외부의 청탁이나 상사의 은밀한 지시가 앞서는 정실주의 등 우리 사회의 후진적 단면이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재판부는 또 “뒷거래를 중시하는 타락한 기업정신,일부 은행원과 기업가의 윤리의식 실종을 추방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청에 비추어 중형을 선고한다”고 강조했다.

법원은 특히 국민의 혈세로 이뤄진 공적자금이 대거 투입된 한빛은행이 관리·감독을 태만히 한 점에 대해서는 비난받아야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또 이 사건에 박지원(朴智元)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재판부는 판결문 마지막 부분에서 “朴전장관이 아크월드 사장 박혜룡씨의 부탁으로 한빛은행 이수길 부행장 등에게 관악지점에 대한 본점 감사 등과 관련해 청탁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든다”고 밝혔다.

이 사건을 신창섭 전 지점장과 박혜룡씨 등이 거액을 노려 저지른 단순 사기극으로 해석했던 검찰과 달리 ‘권력형 사건’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재판부는 그러나 朴전장관의 개입 의문을 제기했을 뿐 더 이상 발전시키지는 못했다.검사가 제출한 수사기록이나 피고인들의 법정진술 등만으로 판단해야 하는 법원으로서 더 이상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설명이다.

서울지검은 지난해 10월 “朴전장관이 다른 안건으로 이수길 부행장과 통화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출과 관련한 압력을 넣은 흔적을 찾지 못했다”고 발표했었다. 재판부는 朴전장관 개입 가능성의 근거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지난해 1월 18일 한빛은행 관악지점의 아크월드 등에 대한 여신 등이 본점 수시검사에서 지적됐고▶1월 19일 아크월드 박혜룡씨가 朴전장관의 집무실에 찾아갔으며▶같은 날 오후 이수길 부행장이 신창섭 지점장에게 전화를 걸어 잘 도와주라는 취지로 말한 점▶불법대출이 같은 해 2월부터 시작됐다는 점 등을 들었다.

재판부는 박혜룡씨와 朴전장관의 관계에 대해서는 수사기록이나 박혜룡씨의 법정 진술보다 국회 청문회 속기록에 신빙성을 두었다.속기록에 따르면 朴혜룡씨는 1999년 이후 朴전장관의 집에 일곱차례 정도 방문해 양복·넥타이를 선물하는 등 돈독한 관계였다는 것.

김승현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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