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주적개념 트집잡을 땐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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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한이 국방백서에 나타난 주적(主敵)개념을 또 문제삼는 모양이다.

경의선 복원 군 실무회담 도중 갑자기 주적개념을 삭제하지 않으면 국방장관 회담은 없다고 선언했을 뿐 아니라 실무회담에서 어렵게 합의한 경의선 철도 및 도로공사 'DMZ 공동규칙안' 도 교환하지 않겠다고 통보해 이마저 발효가 늦어지게 됐다고 한다.

북한이 그동안 주적개념의 철회를 요구해오긴 했지만 경의선 복원과 관련한 군 실무자간의 회담에 참여해 많은 진척을 보여왔던 만큼 돌연 이것을 국방장관 회담을 연기시키는 구실로 삼은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남북 양측은 현재 군사적으로는 정전(停戰)상태다.

그래서 지난 50년간 남측은 북을 주적으로, 북 역시 남측을 적화(赤化)대상으로 간주해왔던 터다.

남북관계가 지난해부터 크게 개선돼 이산가족이 만나고, 경제협력이 진척되고, 철도를 복원하는 데까지 이르렀다고 하지만 군사적 긴장관계가 실질적으로 해소된 것은 아니다.

때문에 정전체제를 대체할 항구적인 평화협정이 만들어지기까지는 현재와 같은 잠정적 상태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

북측이 '남반부의 적화통일' 을 규정한 노동당 규약을 유지하는 것 또한 같은 이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측이 이를 문제삼아 군사적 긴장완화 문제를 논의할 국방장관 회담을 일방적으로 연기하는 것은 남한 국민뿐 아니라 대외적인 측면에서도 좋지 않은 인상을 줄 것이며 특히 북한을 여전히 '불량국가' 로 간주하는 미국 새 행정부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지 않을는지 걱정이다.

주적개념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는 남측 내부에서도 많은 논의가 있는 만큼 앞으로 남북관계 진전에 따라 이 문제는 별도의 논의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북측이 현실적인 상황을 트집잡듯이 해서 국방장관 회담을 까닭없이 연기한다든가, 또는 합의불이행의 구실로 삼는다든가 하면 북한에 대한 불확실성만 키우고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결과가 될 것이라는 점을 북한 당국은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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