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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주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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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호 37면

‘내가 마음대로 돈을 찍어 쓸 수만 있다면…’.

김광기의 시장 헤집기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꿈을 꿔 봤을 것이다. 뒤이어 생기는 궁금증 하나. 도대체 어떤 연유로 중앙은행만 돈을 찍어 내는 독점적 권리를 갖게 됐을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절대 군주가 국가를 통치하던 시대에는 화폐 발행권도 왕의 전유물이었다. 화폐 발행의 이익을 의미하는 ‘시뇨리지(Seigniorage)’라는 말이 불어의 ‘군주(Seigneur)’에서 비롯된 것도 그런 이유다.

왕은 돈을 만들 권리를 지방 귀족 등에게 나눠 주고 시뇨리지를 거둬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발권력은 세계 각국의 왕조에 암적 존재이기도 했다. 세금 징수가 여의치 않으면 화폐 발행을 남발해 구멍 난 재정을 메우기 일쑤였다. 이에 따른 화폐 질서 붕괴와 물가 폭등은 왕조의 몰락을 재촉했다.

자본주의의 태동과 함께 등장한 신흥 부르주아 계급은 군주의 절대 권력에 도전했고, 화폐 발행권도 빼앗아 오기에 이르렀다. 오랜 투쟁의 결과 화폐 발행권은 정부로부터 독립된 중앙은행으로 이양됐다. 근대 중앙은행의 효시는 1694년 설립된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이다. 영란은행은 당시 프랑스와 전쟁을 준비 중이던 영국 정부가 전비를 대출받을 목적으로 자본가들과 타협해 만들었다. 영란은행은 자본가들이 100% 출자한 민간 은행이었다. 런던 일원에서 제한적으로 은행권을 발행하다 발권력을 계속 키워 1844년 전국적 독점권을 확보하게 된다. 자본가들이 돈의 권력을 완전히 넘겨받아 오늘날의 중앙은행 골격을 완성하는 데 150년이 걸린 것이다. 다만 통화가치의 안정을 위해 화폐 발행량은 금 보유액 규모로 엄격히 제한됐다.

그러나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과연 중앙은행을 자본가들에게 맡기는 게 타당하느냐는 비판이었다. 국민의 손으로 넘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급기야 1946년 영국의 노동당 정부는 영란은행을 국유화해 버렸다. 그러나 정부 조직에 편입시키지는 않고, 정부 밖에 존재하는 독립된 특별기구로 기능하게 했다. 임기가 한정된 정권이 발권력을 휘둘러 돈의 가치를 춤추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국민의 뜻을 존중한 결과다. 그때부터 중앙은행 총재는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선진국일수록 중앙은행 총재의 선출에 심혈을 기울인다. 영란은행 총재는 하원 다수당의 지명과 의회 청문회를 거쳐 여왕이 임명한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의회 청문회와 찬반 표결로 확정된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의 3월 말 임기 만료를 앞두고 총재 선출 방식에 대한 논의가 뜨거웠다. 대통령의 임명만으로 모든 게 끝나는 절차를 바꿔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한은 총재의 임기는 4년이다. 그러나 여당인 한나라당의 소극적인 태도로 결국 무산됐다. 청와대와 정부의 의중을 잘 헤아려 추종할 인물이 후임 총재로 올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은 돈의 주권에 관한 한 아직 후진국이란 소리를 들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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