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소인이 군자를 講하는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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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자기에게 삶의 올바른 길을 제시해 준 지고(至高)한 성인이 '한 해설자에 의해 '비하되고 훼손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인간으로서 '참기 힘든 고통이다.

*** 공자의 가르침 훼손 우려

유교적 군자상(君子像)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김용옥(金容沃)교수가 논어를 강의한다고 했을 때 근심스러웠지만 설마 공자의 가르침을 훼손하기야 하겠는가 했다.

논어의 핵심적인 구절들은 대체로 뜻이 명백하기 때문에 金교수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 해도 왜곡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김용옥 교수도 논어를 강의하면서는 조금씩이라도 군자상에 접근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가져보았다.

그러나 몇달이 지난 지금, 金교수의 변모를 기대할 수 없음이 분명해 진 것은 물론 공자님의 가르침이 진흙탕에 내던져졌다는 위기감이 든다.

학자는 위대한 사상가도 비판적으로 고찰할 수 있고 학자에게는 객관적인 냉정함도 필요하다.

그러나 숭고한 학문이나 사상 앞에서 겸허해지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훌륭한 인문학자가 될 수 없다.

공자의 사상을 접하고서 공자를 무한히 경모하고, 단 하루만이라도 진정한 군자가 될 수 있다면 그날 밤에 죽어도 아무 여한이 없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공자의 사상을 이해했다고 볼 수가 없다.

어떤 사상가를 경모한다고 해서 그의 사상의 시대적 한계나 악용될 소지를 감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김용옥 교수는 이미 도올서원에서 공자를 몇번씩이나 강의했다고 하는데 그의 태도와 분위기를 보면 공자가 제시했던 군자상의 지극한 아름다움을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사람 같다.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자기를 알아본다고 의기양양해 하고, 비판을 받으면 분해서 펄펄 뛰는 金교수는 '人不知而不온' 대목에서는 공자가 등용되지 못해 도를 펴지 못하고 고생한 이야기만 하고 빠져나갔고, 2천년 동안 선비의 수신계가 되었고 金교수가 정말 깊이 새겼으면 싶은 '吾日三省吾身' 은 '한참 아래' 인 증자의 말이라면서 무시해버렸다.

金교수의 KBS 강의준비 부실이나 강의 태도를 보면 '爲人謀而不忠乎' (남을 위해 일을 도모하는데 성실치 못하지 아니한가)와 '傳不習乎' (전수 받은 것을, 또는 자신이 남에게 전하는 것을, 몸소 실천하지 않지는 않았는가)를 그에게 묻고싶다.

쌍소리가 그의 트레이드마크이자 공격과 방어의 청룡도인 金교수는 '君子 出辭氣 斯遠鄙倍矣' (군자는 소리내어 말할 때 비루하고 도리에 어긋나는 말을 멀리 해야 한다)같은 대목도 역시 증자의 '개똥같은 소리' 라고 일축해버리고, 군자란 모름지기 욕설도 거침없이 퍼붓는 사람이라고 주장할 것인지?

金교수는 증자와 유자를 자기 종이라도 꾸짖듯이 마구 폄훼(貶毁)하더니, 드디어는 공자마저 마치 자기의 문하생이나 되는 듯, '사무사(思無邪)라는 말로 공자가 나한테 점수땄어'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사람이 소인이 아니라면 누구를 소인이라 하겠는가.

1980년대에 金교수가 쌍소리를 종횡무진으로 해서 충격파를 일으켰을 때는 비속어 구사가 일종의 권위거부적 선언성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엔 권위의 부재가 위기상황에 이르렀고 젊은이들은 쌍소리하는 어른을 귀엽게 보아준다.

그러니까 중년을 넘긴 어른이 비속어를 남발하는 것은 젊은이들에게 재롱떠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도올의 비속어 사용은 천박할 뿐 아니라 지극히 부적절해서 역효과를 낸다.

*** 군자의 뜻을 잘 새겨야

가령 사마천이 궁형(宮刑)을 받았는데 그것은 '××을 발기는' 벌이라고 설명을 하면 그 형벌의 잔혹성과 부당성의 느낌은 사라지고 사마천의 품위만 찢겨진다.

또 공자의 부모가 야합을 해서 공자를 잉태했다는 옛 문헌을 인용하는 것은 가하지만 즉 ×을 해서 낳은 것이라고 강조할 필요는 없다.

그런 표현을 쓴다고 공자가 인간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는 않고 말한 사람의 천박함만 느껴진다.

계속 핏대를 올리며 쇳소리로 욕을 남발하는 사나이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남의 가치를 모를까봐 걱정하고, 사욕이 없기 때문에 근심도 두려움도 없고 세속적 이익에 초연하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언제나 편안하고 안색은 부드럽고 품격이 저절로 배어나오는 군자의 도를 강의하는 부조화가 재미있지 않아서 슬프다.

徐之文 고려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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