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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신좌파 실험] 프랑스 조스팽총리(下)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지난달 말 프랑스 전역에서 30만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정년 연장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노동자들이 일할 수 있는 나이를 늘리는 데 반대한다는 것이 이상하지만 프랑스의 퇴직연금 시스템을 살펴보면 금방 이해가 간다.

프랑스의 법정 정년은 60세로 유럽 대부분의 나라(65세)보다 낮다. 40년 동안 분담금을 납부한 근로자가 60세에 퇴직하면 최고 월급의 80%까지를 연금으로 받는다. 50세가 넘으면 조기퇴직해 부분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전경련 격인 프랑스경영자협회(MEDEF)는 정년과 조기퇴직 가능연령, 분담금 납부기간을 65세와 55세, 45년으로 각각 연장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고령화로 연금 기금이 바닥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연금생활을 누리려면 5년을 더 일해야 한다. 그래서 수년새 최대 규모의 시위를 벌인 것이다. 저항에 놀란 MEDEF는 결국 꼬리를 내렸다.

연금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공감했던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 총리도 당분간 60세 정년제를 바꿀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처럼 조스팽 정부의 정책은 분명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경제의 활력을 위해서라면 자유주의와의 경계도 수시로 넘나든다.

올해 초 저소득층 지원방안을 둘러싼 논쟁에서 조스팽은 좌파의 '최저임금 인상' 주장을 경제성장과 실업률 감소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물리치고 우파가 제안한 '네거티브 소득세' 제도를 채택했다.

정부가 저소득층에게 소득세를 부과하지 않고 오히려 돈을 주는 제도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에 대한 실용주의의 승리" 를 외치며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시도하는 그의 노선은 '주 35시간 노동제' 와 재정개혁 논란에서 위태로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MEDEF는 지난해 초 35시간제 시행에 따른 불만의 표시로 프랑스판 노사정위원회인 '사회보장회의' 를 탈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35시간제는 10%의 노동시간 감축으로 6%의 추가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의도다. 물론 임금수준은 그대로 유지하고 그에 따른 비용은 정부가 보조한다.

하지만 정부가 보조금 지급 명목으로 사회보장회의 기금 중 4백억프랑(약 7조2천억원)을 꺼내 쓰려 하자 재계가 발끈한 것이다.

정부가 35시간제의 예외 확대 등 완화 제스처를 보이면서 재계는 일단 물러났지만 인력난과 추가근로수당 등의 부담을 안게 됐다는 볼멘 소리는 여전하다.

이원화돼 있는 조세의 징수와 집행을 통합해 낭비 요인을 제거하려는 재정개혁은 노조의 반발에 부닥쳐 내년 이후로 유보됐다.

21세기를 맞이한 프랑스의 꿈은 지속 성장과 완전고용의 실현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연금제도의 개혁과 사회복지 축소, 35시간제 완화 등 자유주의적 요소의 확대 도입이 필수적이라는 게 각종 보고서의 결론이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줄기에 자유주의적 가지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접목하느냐가 프랑스 중도좌파 정부의 과제다.

파리=이훈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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