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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추모각에서 매봉산 오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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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면

167m의 야트막한 산을 오르는 길에 유 열사를 추모하는 고교생들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지역 고교생 및 유 열사 모교인 이화여고 학생들이 지은 추모시들이다. 1986년 추모각이 중축된 이후 수년에 걸쳐 세워진 것이다.

유관순 추모각 뒤편을 통해 매봉산(167m) 오르는 길. 길 옆에 고교생들이 지은 유열사 추모 시비가 여러 개 세워져 있다. 1986년 이후 조성된 길이다. [조영회 기자]

유 열사의 독립정신을 뒤따르겠다는 맹세의 글이 우선 눈에 띈다.

“청자가 곱다한들 임처럼 고을까. 하늘이 높다한들 임의 뜻만큼 높을까. 가시밭 길 푸르른 길 임의 길을 따르리.”(목천고 주아영)

“한껏 벌린 두 팔에 바람벽 같은 조국을 끌어안고 흰옷섶의 무리앞에 다믄 입술로 서신 님. 님의 외침 한 조각이 못내 가슴에 남아 꽃잎새로 눈물만 비쳤더이다.”(이화여고 홍연숙) ‘다믄’등 고풍스런 표현이 군데군데 보인다.

유 열사 죽음을 기리는 시들이 대다수다.

유관순 생가 옆에 세워진 유적지 정화사업 설명비.

“임의 밟으신 길목 접어들며는 진달래 핏빛 붉어 온누리 봄이 오고, 소나기 한 허리에 폭염은 시들었네. 임이여 조국의 영광 위에 햇살같이 깃드소서.” (이화여고 최세라)

“그대 꺽어짐으로 해서 우리는 이곳에 우뚝섰다. 아! 미치도록 그리운 조국의 독립으로 이땅의 해맑은 웃음 이루려 씨 되어 흩날리니 마침내 그대는 배꽃으로 피어나소서.“ (이화여고 김희정)

매봉산 정상에는 사적 230호로 지정된 봉화대가 있고 중턱에는 유 열사 초혼묘가 있다. 유 열사 생가 쪽으로 넘어가는 이 길은 고즈넉한 분위기가 일품이다.

생가 오른쪽엔 1977년 세워진 유관순 유적지 정화사업 설명비가 있다(사진참조). 비문은 소설가 박화성씨가 지었다. 비문 중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뜻에 따른 정화 사업임을 밝히는 부분에서 날짜와 대통령 이름 사이를 공백으로 처리했다. 왕조시대 제왕을 공경하는 의미에서 왕 시호 위를 비우는 것을 따라하고 있다. 서슬퍼런 유신시대, ‘과잉 충성’ 의 모습이 드러난다.

글=조한필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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