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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소프트웨어의 꿈’ 되살려주는 앱센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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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이 행사의 아이디어를 낸 김진형(전산학) KAIST 소프트웨어정책대학원 교수는 “능력과 끼가 많은 제자들이 졸업하고 갈 곳이 없다. 스마트폰의 앱 센터는 기술 하나로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기회를 열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가 지난해 말 ‘앱센터운동 지원본부’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히자 단말기와 통신 업계 할 것 없이 큰 관심을 보였다. 김 교수는 업체들로부터 배타적 사업권 제의를 많이 받았지만 이 기구가 특정 회사와 독점 계약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고집했다. ‘개방’과 ‘공유’라는 앱센터의 정신은 소중했다.

1980, 90년대에 컴퓨터가 점차 보급되고 PC통신이 확산될 때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앞다퉈 멋진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인하대 공과대 3학년이던 조현정이 소프트웨어(SW) 회사를 차린 것이 83년, 대학을 갓 졸업한 이찬진이 ‘아래아한글’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 90년이었다. 95년 서울대 의과대 박사 과정이던 안철수는 직원 셋과 함께 ‘안철수바이러스연구소’를 세웠다. 수많은 국산 SW가 등장했다. 하지만 2000년 전후의 벤처 열기는 코스닥 거품으로 이어지고 거품이 꺼진 결과는 참혹했다. ‘묻지마 투자’가 엄청난 손실을 내면서 ‘벤처사업가=사기꾼’이라는 인식이 퍼졌다. 이후 국산 SW는 맥을 추지 못하고 외국산에 자리를 내주었다. 세계 SW 산업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8%(2009년 기준)에 불과하다. 10년 전 120~130명이던 전산 관련 학과의 정원은 30~70명으로 줄었다. 전산 전공 학생들의 꿈은 구글에 들어가는 것이라는 말도 유행한다. “창업이요? 그런 건 꿈도 안 꿔요. 고생만 하고 성공하기 힘들고. 국책연구소 정규직 연구원이 최고의 직장이죠.” 명문대 전산 관련 학과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의 말이다.

미국에서 활동하다 한국에 들어와 SW 사업을 시작한 안현덕 사장. 새롬기술 미국법인장을 역임하고 다이얼 패드 개발의 주역이던 그는 한국에 다시 들어오면서 ‘과연 한국에 SW 전문인력이 남아 있을까. 그들의 능력은 어느 정도일까’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을 함께 해보고 깜짝 놀랐다. 열정과 실력이 넘치는 젊은이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이번 ‘앱센터 콘퍼런스’에서 보여준 청년들의 열기가 다시금 SW와 벤처 창업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켰으면 좋겠다.

박혜민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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