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고·중학교 “편법입학 저쪽서 제안” 서로 떠넘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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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24일 자율고의 사회배려대상자 전형에 편법합격한 학생들을 일반고로 강제 전학시키겠다는 서울시교육청의 방침이 전해지면서 해당 자율고와 중학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편법을 부추겼거나 묵인했다는 책임을 피하기 위해 서로에게 비난의 화살을 날리기도 했다.

반면 해당 학생과 부모들은 “원서 내라고 해서 냈는데 왜 우리가 피해를 봐야 하느냐”며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반발했다.

해당 전형에 편법 지원을 부추긴 것으로 지목된 자율고들은 일단 사실을 부인하기 바빴다.

‘성적우수학생을 해당 전형에 추가 추천해 달라’며 중학교에 먼저 연락한 것으로 알려진 S자율고의 교장은 “중학교에서 먼저 문의전화가 왔고 우리가 연락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해당 전형의 추가모집에서 특목고에 지원했다 떨어진 학생들이 많이 원서를 냈지만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학생은 대부분 돌려보냈다”고 주장했다. 이 고교의 A교사도 “필요한 서류는 중학교에서 마련하는 거고 우리는 면접만 본다”며 “학교장 직인이 찍힌 추천서는 중학교에서 알아서 판단한 것”이라고 책임을 중학교에 돌렸다.

J자율고 김모 교감도 “학교장 추천서를 받아온 사람한테 어떤 사유로 추천서를 받았느냐고 일일이 따질 수는 없지 않으냐”고 항변했다. 또 다른 J자율고의 김모 교장도 “중학교에서 요즘 학생의 가정 형편을 잘 모르는 게 문제”라며 중학교의 허술한 학사관리를 비판했다.

반면 중학교들은 “자율고들이 자기들의 책임회피에만 급급한다”며 분개했다. 서울 J중학교 박모 교장은 “자율고가 학생·학부모를 가지고 놀았다”며 “학교장 추천서만 가져오면 된다고 해서 학부모들이 추천서를 써 달라고 아우성이었는데 이제 와서 우리한테 책임을 떠넘긴다”고 지적했다.

일부 자율고는 정면 돌파에 나서기도 했다. H자율고 김모 교장은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에서 미달 사태를 빚은 자율고로서는 재정 확충을 위해 정원을 채우려면 이렇게라도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외국어고에 떨어진 부유한 학생들이 자율고 추가 모집에 붙었다면 그런 학생들은 (입학을)고려해 볼 만하지 않느냐”고도 했다.

편법 합격 의혹을 받는 학생과 학부모들은 일반고 강제 전학 소식에 강하게 반발했다. J자율고 입학을 앞둔 B군(17)은 “자율고에서 처음엔 ‘아무 서류도 필요 없다’고 하더니 이제 와서 말을 바꿔 나만 억울하게 됐다”며 “전학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딸이 E자율고 입학을 앞둔 학부모 C씨(45)는 “1월부터 교복을 입고 자율고의 입학 전 프로그램에 다녔다”며 “아이가 충격받을까 봐 걱정”이라며 울먹였다. 또 다른 자율고 합격생 학부모 고모(52)씨는 “중학교 담임교사가 먼저 ‘추천서만 있으면 된다’고 해서 지원했는데 강제로 전학가야 한다면 아이에겐 평생 큰 상처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학부모들은 전학 조치가 강행될 경우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강경 입장이다. 하지만 구제될지는 미지수다. 행정법원 부장판사 출신의 박상훈 변호사는 “제도의 취지에 맞게 가정환경이 어렵거나 교장 추천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할 만한 정황을 입증할 수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구제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편 서울시교육청은 26일까지 중학교 교장들이 제출한 추천서 작성 사유서를 검토해 문제가 되는 합격생을 골라낼 계획이다.

사유서가 석연치 않은 경우는 학교에 감사관을 직접 보내 교장과 대면 조사도 벌일 방침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지원 자격이 안 되는 줄 알고도 추천서를 써준 학교장들은 징계하고, 문제가 된 자율고는 교육과학기술부와 협의해 제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또 자율고를 포함해 올 하반기부터 학교장(또는 교사) 추천서가 필요한 외국어고·과학고·국제고 입시에 대비해 중학교 내에 학생 추천위원회를 설치키로 했다. 추천위원회를 통해 추천 기준과 방식 등을 구체적이고 명확히 하겠다는 취지다.

박유미·김민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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