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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세상] 미당 이은 운보의 타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가 있습니다. 어머니는 등잔불 밑에서 바느질을 하고 아이 네명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지난 23일 타계한 운보(雲甫)김기창(金基昶)화백이 1937년 선전(鮮展)최고상인 창덕궁상을 수상한 '고담(古談)'에서는 옛날 이야기가 두런두런 흘러나오는듯 합니다.

그러나 운보는 7세 때 앓은 장티푸스로 아무 것도 들을 수 없고 제대로 말도 할 수 없는 청각장애였습니다.

"남들은 소음을 들을 제/운보는 신의 음성을 들었고/남들은 속된 말들로/온종일 지껄일 적에/운보는 임 데리고 앉아/회심의 밀어를 바꿨었네."

이은상 시인은 운보와 그의 그림을 이렇게 시로 읊으며 그를 '화선(畵仙)'으로 불렀습니다.

한국화 ·서양화, 구상 ·비구상의 인위적 경계를 뛰어넘는 그의 그림에서는 우리 삶을 아득히 깊게,넉넉하게 하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악성(樂聖)베토벤이 청력을 잃고 불후의 교향곡 '운명' 과 '합창'을 얻었듯 운보는 현대미술의 선적 경지인 바보산수 ·청록산수의 세계를 열었습니다.

남의 말을 못알아 들어 어릴때부터 운보는 '바보'란 놀림을 받았읍니다.선비적 담박한 기개나 풍류적 시정(詩情)이 넘처나는 대신 어리석음의 넉넉한 여유와 웃음이 절로 나오는 자신의 산수화를 운보는 스스로 '바보산수'라 불렀습니다.

청각장애란 타인의 놀림,자신의 한계를 극복이라는 대결의 차원이 아니라 너그럽게 받아들이며 그러한 경지를 이뤄 그림의 신선에 이르게된 것입니다.

"앞으로도 붓놀릴 힘이 남아 있을 때까지 바보산수를 할거야.바보란 덜 된 사람이지. 내가 바로 바보야. 그러니 익을 때까지 계속하는거야. 관 속까지 붓을 가지고 갈거야. 예술에 완전무결한 것은 없어." 말년 한 인터뷰에서도 이렇게 운보는 계속 '바보'임을 강조했습니다.

자신이 덜 되었기에 계속 자신의 작업, 창작을 밀어부칠 힘이 남아있게 되고 그래 인간의 세계를 훌쩍 뛰어넘는 선적인, 신화적인 경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들려주게 된 것입니다.

지난해 타계한 서정주 시인의 호는 미당(未堂)입니다.완성되지 않은,덜 된 집이란 뜻으로 스스로 붙인 것이지요.

미당도 "아직 덜 되어서 무엇인가 더 되려고 떠도는 것이 우리의 삶 아니겠는가"라며 눈을 감았습니다.

'입에서 나오면 모두 시', '붓만 대면 모두 그림'이 되던 시단과 화단의 두 신선의 잇단 타계로 이제 우리는 신화와 전설의 세계를 잃고 치밀하면서도 정신은 부박한 21세기로 접어든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왠만큼 이루면 제각각 대가임을 자임하며 주저앉아버리는 우리의 문화 ·정신 풍토에 대한 우려일 것입니다.

이경철 문화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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