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러시아 NMD 신경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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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를 둘러싸고 장군멍군식의 주도권 쟁탈전을 하고 있다.

부시가 취임일성으로 NMD체제 구축 강행을 선언하자 푸틴이 러시아도 비슷한 방위망을 추진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푸틴은 또 NMD를 무력화할 수 있는 첨단 미사일 개발에도 착수했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최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부시 미 대통령에게 "러시아-유럽 미사일방위(REMD)체제 구축에 미국이 동참하겠다고 약속하면 미국의 NMD체제 추진을 용인하겠다" 는 내용의 비밀편지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러 국가두마(하원)의 야블린스키 의원을 소식통으로 인용한 이 신문은 푸틴 대통령이 "미국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와 유럽도 테러리스트나 '예측불가능한 국가들' 로부터의 미사일 공격을 방어할 권리가 있으며 REMD는 미국에 적대적인 개념이 아니다" 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미국의 NMD 추진 명분처럼 러시아도 비슷한 형태의 미사일 방위망 구축을 시도할 수 있다는 푸틴의 이 제안은 절묘한 수로 풀이되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NMD가 러시아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고, 이라크.북한.시리아 등 '우려대상국' 의 공격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해왔기 때문에 러시아의 요구가 기술적 지원 차원이라면 거절할 명분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러시아의 제안을 수락하면 NMD를 통해 군사적인 우위를 확고히 다지겠다는 당초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그렇게 되면 의회에서 NMD에 대한 예산 지원이 막힐 수도 있다. 부시로서는 무시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제안인 것이다.

푸틴은 이같은 제안을 하면서 동시에 미국이 일방적으로 NMD를 강행할 것에 대비해 첨단무기 개발도 추진 중임을 시사했다.

더 타임스는 25일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가 향후 10년간 현재의 국방 예산을 두배로 늘려 NMD 방어막을 뚫을 수 있는 미사일을 개발하도록 지시한 것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지난주 국내총생산(GDP)의 5%까지 국방예산을 늘리는 계획을 승인했으며 앞으로 10년 동안 약 1백62조원을 투입해 토폴 M 미사일에 다탄두를 장착하거나 SS-18 로킷을 신형으로 교체할 방침이다.

푸틴의 이같은 강.온 양면작전에 부시가 어떻게 대처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힘에 의한 평화' 를 부르짖는 부시 군사.외교팀의 강공에 푸틴이 "호락호락 당하지 않겠다" 는 입장을 전달한 것은 분명하다.

베를린〓유재식 특파원,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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