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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 아이크의 '도둑질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1952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아이크)는 민주당 해리 트루먼정부의 봉쇄정책을 비판했다.

봉쇄정책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들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공산주의 압제에 방치하는 부도덕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아이크는 봉쇄가 아니라 해방을 목표로 할 것이며,공산주의를 물리치는 격퇴정책을 펴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집권후 아이크는 봉쇄정책을 그대로 따랐다.한국에선 53년 7월 휴전협정을 맺어 전전(戰前)상황으로 돌아갔다.

아이크는 원자폭탄 사용까지 검토했지만 승리의 대가가 너무 크다고 판단해 휴전을 택했다.56년 10월 헝가리사태 때도 미국은 개입하지 않았다.동유럽에 대한 소련의 기득권을 인정하는 것이 평화를 유지하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이크는 건전재정을 유지하기 위해 군사비 지출을 억제했다.국민총생산(GNP)의 20%까지 군사비를 책정할 수 있도록 한 국가안보회의(NSC)결정을 따르지 않았다.

재임기간 내내 군사비를 4백억달러 이하로 유지했으며,육군 1개 사단과 여러개 공군 비행단을 해체했다.이에 항의해 육군 참모총장 3명이 잇따라 사임했지만 전쟁영웅 아이크의 권위를 누를 수 없었다.

아이크는 군사비 지출에 대해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었다.

53년 4월16일 미국신문편집인협회 연설에서 아이크는 “우리가 만든 모든 총 ·전함 ·로킷은 결국 굶주리면서 먹을 것을 공급받지 못하고 헐벗었으나 제대로 입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도둑질을 의미한다”면서 구축함 한 척을 만들 돈이면 8천명이 들어가 살 수 있는 주택들을 지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61년 1월 대통령직을 떠나면서 행한 고별연설에서 아이크는 다시 한번 냉전의 ‘국내적 비용’을 우려했다.

아이크는 “거대한 군사집단과 대규모 무기산업의 결합은 미국 역사상 새로운 것으로서 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우리는 정부 각 위원회에서 이들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군산복합체가 미국에 끼칠 폐해를 경고했다.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는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 구축을 최우선 과제중 하나로 삼았다.적의 미사일로부터 미국 본토를 방어하는 거대한 방패를 만드는 이 계획에 6백억달러 이상이 투입될 전망이다.무기산업 입장에선 노다지를 캔 셈이다.

상대방은 방어체제를 완벽히 갖춘 반면 자신들은 무방비상태가 될 러시아와 중국이 크게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미국의 우방인 캐나다 ·유럽 국가들도 새로운 무기개발 경쟁을 우려한다.

그동안 전례없는 호황을 누려온 미국이지만 매일 끼니를 걱정하는 인구가 3천1백만명이나 되고,상위 1%가 국부의 40%를 차지하는 엄청난 빈부격차가 존재한다.

지난번 대통령선거에서 나타난 표(票)의 대립 양상은 미국 사회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일찌기 아이크가 갈파한 ‘도둑질’이론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정우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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