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윷가락 던지며 크게 한번 웃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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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놀이는 '내' 가 아닌 '우리' 를 돌아보게 한다. 흥겨운 놀이마당은 가족과 친구, 나아가 낯선 타인과도 하나가 되는 체험의 장이다.

올해는 신사(辛巳)년 뱀의 해이자 21세기에 들어서는 문턱. 설을 맞이하면서 차츰 잊혀져만 가는 우리 놀이와 풍속을 돌아보며 예와 지금, 나와 가족, 전통과 미래의 연결고리를 되새겨 보는 일도 의미가 있을 법 하다.

부산한 분위기의 설 아침 시간을 보내고 난 뒤면 가족끼리 모여 앉아 윷판을 깔아 놓고 윷놀이를 즐겨보자. 화투를 붙잡고 고스톱에 매달리기 보다 가족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판을 만드어 보자는 것이다.

도.개.걸.윷.모로 잦혀지는 윷가락에 맞춰 말을 움직이면서 떠들썩한 가운데 점차 흥겨워지는 설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윷판에서 모나 윷만 필요한 게 아니다. 상대를 붙들려면 도도 필요하고 개도 있어야 한다. 학식 있고 똑똑한 사람만 있어야 하는 게 아니다. 윷놀이에는 이런 평등 정신이 담겨 있다." 민속놀이 연구가 이철수씨가 늘어놓는 윷놀이 예찬론이다.

윷가락을 잡았으면 내친 김에 윷점을 한 번 쳐보자. 윷가락을 세 번 던져 나온 결과로 점을 치는 윷점은 처음 나온 말을 상괘(上卦)로, 두번째를 중괘, 세번째 것을 하괘로 삼아 주역(周易)의 64괘 점사(占辭)를 찾아 읽으면 된다.

윷점이 내놓는 결과에 일희일비하기 보다는 우리 할아버지.할머니들이 거쳐온, 쉽지 않았던 생활의 면모들을 떠올리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전통놀이 방식을 응용해 가족과 함께 즐기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어린 시절 즐겼던 제기 차기를 족구경기에 맞춰 놀아보는 것도 한 방법. 작은 코트를 만들어 놓고 장대 두 개를 가운데 양쪽에 세워 1m 높이로 줄을 연결한다.

상황에 따라 놀이 인원을 정해 일반 족구 경기처럼 제기를 서로 차 넘기며 점수를 계산해 승부를 가린다.

시원한 마당에 나가 널을 뛰면서 새해를 맞이하는 것은 우리 설의 빼놓을 수 없는 풍경. 하지만 콘크리트로 둘러쳐진 아파트 숲에서 널을 뛰기란 예삿일이 아니다.

아예 풍성한 설날 행사를 준비한 박물관 등을 찾아 가는 것은 어떨까.

이번 설에는 둘러볼 곳이 적지 않다. 박물관 등마다 우리가 흔히 즐기는 설 놀이 외에 아스라한 기억 속으로 밀려났던 전통놀이와 풍속을 복원해 선 보이는 곳이 꽤 많다.

널뛰기는 이런 행사 가운데 '약방의 감초' 격이다.

멍석 묶음이나 가마니 뭉치 위에 길다란 널판지를 깔아 놓고 두 사람이 양쪽에 올라가 솟구치면서 즐기는 이 놀이는 '높이 올라가기' '상대 떨어뜨리기' 등으로 내기를 하면 흥이 곱절이 된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이번 설에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다. 전통의 복원과 승계로 '시름을 딛고 희망의 2001' 로 나아가자는 취지에서다.

뱀의 해를 기념하는 특별전 '풍요와 다산을 부르는 뱀' 을 시작으로 '소지(燒紙)끼우기' '볏가릿대 세우기' 등 이제는 낯설면서도 어느 한 구석인가 반가움을 자아내는 행사들을 준비했다.

소지는 무언가를 신에게 기원하는 행위의 하나. 개인과 공동체 사람들의 희망을 담은 한지(韓紙)를 불살라 신에게 띄워 보냄으로써 소원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풍습이다.

다시 다가온 경제 한파 때문일까. '볏가릿대 세우기' 는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상징적으로 복원한 지방 풍습이다.

충남과 전남 일대에서 전해져 내려왔던 이 풍속은 음력 정월 대보름에 오곡(五穀)종자를 대에 매달아 세운 뒤 이월 초하루에 눕히는 것. 이 때 매달아둔 종자에 싹이 튼 것을 보고 풍년 여부를 예측한다는 것이다.

붉고 푸른 화살(矢)을 각각 나눠 가지고 병(壺)에 이를 던져 넣는 투호(投壺)도 빼놓을 수 없는 설놀이. 병 가운데 난 구멍이나 귀구멍에 살이 들어가면 점수로 계산해 이기고 지는 것을 가린다.

화살과 전통적인 모양의 병이 드문 요즘은 화병에 탁구공 넣기 등으로 대신할 수 있다.

광주박물관과 민속박물관은 우리에게 잊혀진 놀이인 승람도.승경도 놀이를 선보인다. 이들은 모두 말판에 말을 놓고 주사위와 비슷한 윤목을 통해 목표지점까지 누가 더 먼저 가는지를 겨루는 놀이다.

승람도는 팔도 유람을, 승경도는 말단 관직에서 최고 벼슬까지 누가 더 먼저 도착하는지를 경쟁한다.

국립 중앙박물관을 비롯해 전국의 각 국립박물관들도 설을 전후해 연날리기.투호.윷놀이 등과 국악공연, 농악 등을 마련해 놓고 설 손님들을 맞이한다.

남산 한옥마을에서는 서울 재수굿을 선보이고 연 만들기 체험, 복조리 나누기 등의 행사도 마련했다.

이밖에도 전국의 궁과 능, 지방 유적관리소 등에 가면 다양한 민속놀이를 즐길 수 있다.

문화재청은 이 기간동안 경복궁과 덕수궁 등 서울시내 4대 고궁과 종묘, 서울.경기지역의 14개 능 등을 무료 개방한다.

아울러 널뛰기.제기차기.윷놀이.투호 등 민속놀이 마당을 마련해 관람객이 즐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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