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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1. 샛강<1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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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모네 집은 방 세 칸짜리 한옥이었다. 가운데 마루를 사이에 두고 안방과 건넌방 문간방이 달린 그런 집이다. 내가 어머니와 함께 들어서니 아버지와 이모부 둘이 마루 끝에 걸터앉아서 소주를 한 잔씩 하고 있었다. 이모는 어머니를 보자 먼저 울음을 터뜨렸다. 이모네 담장 아래 우리네처럼 일년초를 가득 심어 놓았는데 빨간 분꽃이 가득 피어 있었던 게 생각난다. 건넌방의 미닫이가 열려 있었고 멜빵처럼 광목 끈을 매어 놓은 작은 널판자의 상자가 보였다. 나는 두려움이 섞인 눈으로 그 상자를 바라보면서 그게 뭔지 대번에 알아보았다. 웬 텁석부리의 아저씨가 들어와서 상자를 짊어지고 나가는데 이모가 달려들어 못 가게 했고 어머니와 이모부가 울부짖는 그녀를 말렸다. 어릴 적에 인옥이 생각을 하면 언제나 후회가 되었다.

이모네도 태금이라는 누나가 있었지만 그녀가 우리 집으로 온 것은 전쟁 뒤의 일이다. 어머니가 정자 누나를 우리 집으로 데려왔다. 공장에 다니는 저희 마을 언니의 소개로 오게 되었단다. 눈이 크고 볼이 통통했으며 머리는 한 묶음으로 길게 늘어뜨렸다. 그녀는 충청도 사투리를 썼는데 어찌나 말이 느린지 한참을 기다려야 한 문장을 들을 수 있었다. 정자 누나는 육이오 터지고 나서 스스로 고향에 가봐야겠다며 우리 집을 떠났다. 전쟁 중이니 나중에 세상이 좀 안정되면 가라고 했는데도 그녀는 집안 걱정이 되었는지 끝내 가겠다고 고집했다. 제대로 고향에 도착했는지 그리고 어려운 세월을 어떻게든 살아 남았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하여튼 부모와 누나들이 모두 일터와 학교로 나가버리면 나는 혼자서 노는 수밖에 없었다. 집 앞 가죽나무 가로수 그늘 아래 앉아서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곤 했다. 땅에 그으면 하얗게 선이 그려지는 활석이나 못으로 그리기도 했다. 혼자서 이야기를 지어 끝없이 중얼거리면서 그림을 그렸다. 머릿속에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면 먼저 것을 얼른 지우고 그 자리에 새로 그렸다. 어머니는 만주에서의 버릇대로 주말 오후에는 극장에 갔다. 아버지는 그런데 관심이 없어서 어머니와 동행하는 일은 없었다. 아버지는 술도 담배도 하지 않았으니 취미가 뭘까 궁금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글쎄, 낚시질도 한 두어 번 영등포에서 사귀게 되었던 동네아저씨와 가는 걸 보긴 했지만 지속되지는 않았다. 어머니가 함께 교회에 나가자고 하면 '예수님은 좋은 분이라고 알고 있으니 나는 그것으로 족하다'고 하면서 이야기 꺼내는 것 자체를 쑥스러워했다. 가끔 가게에 나가보면 아버지가 이웃 상인들과 점심 내기 장기를 두는 모습은 종종 보았다. 정작 그가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고장난 라디오를 전파상에 맡기지 않고 직접 고쳐낸다든가 하여튼 고장난 기계는 무엇이든지 그의 손에 들어가면 하루 안에 정상으로 돌아오곤 했다. 방안을 온통 무슨 알 수 없는 작은 부속 나부랭이들로 가득 채워서 어머니가 잔소리를 퍼붓곤 했다. 그게 아버지가 좋아하던 일거리였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어머니는 극장에 갈 때면 직장에서 입고 돌아온 옷을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나서면서 나를 손짓하여 불러냈다. 아니면 동네에서 정신없이 다른 꼬마들과 놀고 있는 나를 불러서는 다짜고짜 내 얼굴에 묻은 흙먼지들을 닦아 주었다.

그림=민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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