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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역시나' 청문회 왜 하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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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빛사건' 청문회의 마지막 날인 17일 오전 국회 본청 145호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나흘간 청문회에서 밝혀냈다는 성과를 설명했다.

민주당 대표로 나선 박병석(朴炳錫)의원은 "신창섭 한빛은행 관악지점장과 박혜룡 아크월드 대표가 공모한 금융 사기극임이 밝혀졌다. 외압은 없었다" 고 말했다.

한나라당 임태희(任太熙)의원은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은 부인하지만 朴전장관과 박혜룡씨가 친밀한 사이였던 게 사실로 밝혀졌다" 고 말했다.

청문회 시작할 때와 같은 엇갈린 발언들이었다. 같은 시간 본청 332호 공적자금 청문회장.

민주당과 자민련 의원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증인 신문 방식을 두고 여야가 대립, 이틀째 청문회가 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청문회장 밖에선 한나라당 이강두(李康斗)의원이 "민주당 신문방식으론 공적자금 부실 운용에 면죄부를 줄 뿐" 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해 의욕적으로 출발한 두 청문회가 하나는 '실패' 로, 나머지 하나는 '반쪽' 으로 나뉘는 현장이었다. 그간 청문회를 지켜본 이화여대 김석준(金錫俊.행정학)교수는 "여야가 당리당략에 따라 질의했고, 증인들은 자기 하고 싶은 변명을 충분히 늘어놨다" 며 "실패할 수밖에 없는 청문회" 라고 평가했다.

여야간 미합의를 이유로, 외압 여부를 판단할 기본적 자료인 ▶박지원→이운영(신보 영동지점장)▶박지원→이수길(한빛은행 부행장)▶이수길→신창섭간의 통화내역 조회가 이뤄지지 않은 것도 아쉬움을 남겼다.

상대당과 가까운 증인들에 대한 반대쪽의 흠집내기도 거슬렸다. 민주당 송영길(宋永吉)의원은 증인석에 부인과 함께 앉아있던 이운영씨에게 "성적 향응을 받지 않았냐" 고 물었다.

이에 "우리에게도 인격은 있다" 는 항의를 들었다.

한나라당 엄호성(嚴虎聲)의원은 "朴전장관이 학력을 위조했다" 고 주장했다. 이에 "사안의 본질과 다르고, 사실과 다른 얘기를 한다" 는 반박을 들었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과거 5공.광주청문회가 입증했듯이 청문회는 잘만 활용하면 힘있는 진상 추적수단" 이라면서 "준비부족과 역량 미흡으로 청문회가 점차 정치공세의 장으로 전락, 무기력해지고 있다" 고 아쉬워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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