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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는 수업료 놔두고 감시 안 받는 기성회비로 ‘슬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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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립대인 부산대 입학을 앞둔 아이디 ‘speedboy001’이라는 네티즌이 최근 네이버 카페에 올린 글이다. 댓글은 이렇다.

“학교에 그냥 바치는 돈이 기성회비예요.”

“각과 학생회가 나눠 갖는 돈이래요.”

◆가파른 인상 주도=국립대 등록금은 수업료와 기성회비로 구성된다. 기성회비는 국립대 등록금의 70~80%를 차지한다. 등록금이 자율화 됐지만 국립대는 기성회비만 조정 가능하다. 기성회비란 총장·부총장과 학부모 대표로 이사회를 구성해 자율적으로 쓰는 돈이다. 감시의 사각지대가 되기 쉽다. 국립대가 기성회비를 기형적으로 올릴 수 있었던 배경이다.

국립대 등록금은 인상률로만 따지면 사립대 등록금 인상률을 훌쩍 뛰어넘는다. 대학알리미(www.academyinfo.go.kr) 사이트 자료에 따르면 2008년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4.7%였지만 국립대 등록금 인상률은 평균 8.7%에 달했다. 수업료는 거의 변동이 없는 반면 기성회비는 큰 폭으로 올랐다. 서울대 공대의 경우 수업료는 매년 1만원 정도 오른 반면 기성회비는 수십만원씩 뛰었다.

◆책정도 사용도 대학 멋대로=기성회비는 참석 가능한 학부모들을 초청해 총회를 열어 결정해야 하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규약에 총회 제도 자체가 없는 국립대도 있다. 학교 측이 기성회비 인상안을 결정하면 거의 그대로 통과된다. 무늬만 기성회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대 이광복 예산과장은 “이사들의 참석률은 70% 정도며, 이들 대부분이 학교 발전이라는 명분에 공감하기 때문에 인상안에 대체로 공감하는 편”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국립대 기성회장을 지낸 한 인사는 “이사들은 학교 측의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이는 거수기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인상이 결정된 뒤 이사회에서 추인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기성회비는 학생들의 교육 여건 개선을 위한 시설 투자 등에 쓰이는 돈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엉뚱한 곳으로 새고 있다. 2003년 서울대는 총장 자택이 학교에서 너무 멀다는 이유로 서초구 방배동에 261㎡(79평)짜리 빌라를 공관으로 임대했다. 전세금 6억5000만원은 기성회비에서 지출됐다. 서울대뿐만 아니다. 2008년 국민권익위원회가 전국 주요 7개 국립대 기성회비 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한 지방 국립대의 경우 2008년 기성회비의 14%에 해당하는 131억원을 수당 등 인건비로 쓴 것으로 나타났다. 공무원 인건비를 국가가 아닌 학부모가 부담한 셈이다. 또 다른 국립대는 교직원 사망 장제비가 공무원 연금관리공단에서 지급되는데도 기성회비에서 100만~200만원을 중복 지급했다. 퇴직 교직원에게 금 10돈짜리 행운의 열쇠를 선물하고, 총장 저서를 다량 구입한 대학도 있었다.


권익위는 교과부를 통해 국립대에 기성회비 운영 개선을 권고했다. 하지만 권고를 따른 대학은 거의 없다. 권익위 권고에 법적 강제력이 없기 때문이다. 권익위 김덕만 과장은 “수당을 포함한 인건비·부서운영비 등은 일반회계에 책정돼 있기 때문에 기성회비에서 지출되는 것은 편법·중복 지급”이라며 “부당 사용액을 없앤다면 학생 1인당 등록금을 6~8% 안팎으로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교과부도 손을 놓고 있다. 교과부 관계자는 “국립대 기성회비는 각 대학 기성회 이사회가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대학 총장에게 집행이 일임돼 있어 정부가 간섭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탐사기획팀=김시래·진세근·이승녕·김준술·고성표·권근영 기자, 이정화 정보검색사

◆기성회비=1957년 국가 교육예산의 부족으로 긴급한 교육시설과 학교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충당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법적 근거 없이 ‘국립대학 비국고회계 관리규정’ 제5조의 규정에 따라 시설·설비비, 교직원 연구비, 기타 학교운영경비 등의 목적으로 사용하도록 돼 있다. 기성회비는 형식상 기성회의 ‘자율적’ 납부로 돼 있지만 실제로는 기성회 규약에 따라 전 학부모가 가입해 의무적으로 납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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