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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 세계화 일등공신 마쓰히사 노부유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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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중앙일보는 ‘한식 세계화’ 선언 2년을 맞아 앞으로 매월 1회 관련 특집 기사를 ‘월금섹션 food&’에 싣기로 했습니다. (오늘자 E21~23면) 이를 계기로, 미국에 스시를 본격 보급해 일식 세계화의 공신으로 평가받는 마쓰히사 노부유키의 인터뷰를 게재합니다. 그는 뉴욕에서 시작한 ‘노부’라는 퓨전 일식당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Photograph by Steven Freeman]

1964년 도쿄올림픽 직전, 미국에서 일본 개최를 반대하는 여론이 들끓은 적이 있다. 날생선을 먹는 야만국에서 어떻게 올림픽을 치룰수 있느냐는 게 이유였다. 그랬던 미국에서 80년대 이후 일식은 부유층이 즐기는 고급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극적인 변화에는 마쓰히사 노부유키(松久信幸·61·사진)라는 스타 요리사의 역할이 컸다. 미국에서 ‘노부’로 불리는 그는 퓨전 일식을 예술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듣는다.

그가 4년 전 개업한 뉴욕의 레스토랑 ‘노부 57’에서 그를 만나 성공 비결과 함께 한식세계화를 위한 조언을 들었다. 그는 “차츰차츰 일식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나간 게 주효했다”며 “적절한 양의 코스 요리로 발전시키면 한식도 분명히 세계화에 성공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일식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던 70·80년대에 미국에서 성공한 비결은.

“내가 태어난 일본에서는 날생선을 먹는 게 당연한 걸로 돼 있다. 그러나 79년 내가 로스앤젤레스에 처음 갔을 때 미국인들은 날생선 먹는 걸 꺼려 상당히 당황했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미국인은 새롭고 신기한 음식을 좋아했다. 여기에 착안을 했다. 특히 캘리포니아 주민은 건강에 신경을 많이 쓴다. 그래서 스시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고 유행으로 만들면 성공할 것으로 믿었다. 유행이 되면 너도나도 스시를 먹게 되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처음 시작이었다. 어떻게 하면 현지인들로 하여금 날생선을 먹게 하느냐가 관건이었던 셈이다. 스시도 문제였지만 특히 회는 간장에 찍어먹게 돼 있어 더 힘들었다. 당시 미국에선 생소한 간장 맛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았던 탓이다. 그래서 신선한 샐러드에 겉만 살짝 익힌 참치 조각들을 얹고 ‘생선회 샐러드’라고 이름 붙여 내놓았다. 아주 조금 익힌 것뿐이지만 어쨌든 날생선은 아니어서 미국인들이 좀더 쉽게 다가왔다.”

-페루 등 남미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퓨전 일식을 도입한 것도 성공 비결인가.

“나의 성공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퓨전 일식도 그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페루에서도 날생선을 먹는다. 그러나 한국이나 일본처럼 먹는 게 아니라 레몬즙과 양념에 절여서 먹는다. 이를 ‘세비체’라고 하는데 나는 이 조리 방식을 응용한 일본식 요리를 만들었다. 손님들의 반응도 좋았다. 나는 어떻게 회를 색다르게 내놓을 줄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 이상으로 중요한 게 바로 타이밍이다. 내가 미국에 왔던 때가 일본 음식이 본격적으로 현지에 선보이기 시작한 때였다. 그 덕분에 나는 어떻게 회와 스시를 먹는지를 미국인들에게 소개할 수 있었다. 이것이 중요한 성공의 밑거름이라 생각한다. 타이밍과 경험, 그리고 요리에 대한 열정이 핵심적인 성공비결이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큰 호응을 얻었나.

“그렇지 않다. 음식점을 열자마자 바로 성공한 건 아니다. 나는 87년 로스앤젤레스에 ‘마쓰히사’라는 레스토랑을 열었지만 내 음식이 미국에서 본격적인 인기를 끈 것은 94년 뉴욕에 ‘노부’레스토랑을 개점한 다음의 일이다. 따라서 그 사이 7년은 내 음식이 미국 고객에게 받아들여지는 기간으로 볼 수 있다.”

-어떻게 하면 한국요리를 세계적인 음식으로 만들 수 있을까.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해 다양한 식당에 가봤다. 어떤 음식점에서는 수십여 개의 반찬을 내놓더라. 다른 곳에서는 뉴욕에 있는 한국 음식점처럼 푸짐한 갈비 같은 걸 내놓았다. 개인적 의견으로 음식에선 양이 무척 중요하다. 한국 음식은 양이 너무 많거나 너무 적다. 일본 음식에는 오마카세 요리라는 게 있다. 주방장 추천요리인 셈이다. 이 요리는 디저트를 합쳐 6~7개 코스로 돼 있다. 전채로 시작해 디저트까지 먹으면 딱 적당한 분량이다. 손님들은 양이 지나치게 많으면 그 요리를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한국 음식도 그래야 한다. 갈비요리를 내더라도 전채부터 메인코스, 후식까지 적절하게 양을 조절해야 한다. 갈비를 2~3점 정도만 놓는 한국식 코스요리를 개발해야 한다는 게 나의 의견이다. 그러려면 더 많은 외국인이 한국요리를 먹어보려고 할 것이다. 내가 하는 ‘노부’에는 한두 명의 손님이 와도 코스 요리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식 갈비요리를 내는 방식으로는 혼자 가서 즐기기 어렵다.”

-매운맛이 한식 세계화의 걸림돌이 되진 않을까.

“나는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데 많이 먹으면 땀을 흘린다. 체질에 따라 그런 경우가 적지 않다. 화장을 한 여성이 매운 걸 먹고 땀을 흘리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웨이터가 스테이크 주문을 받을 때 ‘고기를 얼마나 익혀드릴까요’라고 묻는 것처럼 ‘얼마나 맵게 하길 원하느냐’고 물어서 해결할 수 있다. 웨이터의 존재 이유는 바로 손님과 요리사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다. 경험상 어느 한국 음식점에 가도 ‘얼마나 맵게 해드릴까요’라고 묻는 경우가 없었다. 고객 서비스가 더 세밀해질 필요가 있다.”

-한국음식의 세계화는 가능할까.

“100% 가능하다. 한국은 일본과 중국처럼 역사와 문화가 있는 나라다. 역사가 깊으면 일본의 전통적인 가이세키(會席) 요리처럼 특유의 음식이 있게 마련이다. 이를 세계인들이 즐기게 된다. 그러나 음식은 일종의 유행이란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요리의 전통적인 요소를 무시해선 안되지만 동시에 전 세계인들이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요소를 섞어 하나의 유행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어떻게 한식을 유행시킬 수 있을까.

“누군가가 한식을 먹어보고 이를 전파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요리 잡지 등을 통해 프로모션을 하는 것도 좋다. 전세계 수많은 나라에 있는 한국 대사관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젊은 스타 셰프가 나오는 것도 중요하다.”  

글=뉴욕=남정호 기자
사진=Steven Freeman

◆마쓰히사 노부유키=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일본 요리사로 꼽힌다. 그에겐 ‘스시(초밥) 세계화의 주역’이란 별명이 붙어있다. 1994년 뉴욕 맨해튼에 레스토랑 ‘노부’를 개업한 뒤 스시와 생선회가 미국 주류사회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현재 19개 도시에 25개 지점을 거느리면서 ‘퓨전 일식’의 대명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87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스에 ‘마츠히사’라는 작은 레스토랑을 열면서 미국 시장에 입성했다. 일식에다 남미풍을 가미한 요리로 인기를 끌면서 로버트 드니로를 비롯한 유명인사들이 단골이 됐다. 드니로는 마츠히사에게 뉴욕 ‘노부’를 열게 했다. 드니로는 이 레스토랑의 공동투자자이다.

그는 24세에 페루 리마에서 일식당을 열어 큰 성공을 거뒀다. 그 뒤 아르헨티나를 거쳐 미국 앵커리지로 건너가 레스토랑을 개업했으나 50일 만에 화재로 전소됐다. 빈털터리가 된 그는 일본과 미국 캘리포니아의 일식당 요리사로 취업했다가 자기 식당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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