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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냐, 소녀시대냐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중앙일보와 중앙SUNDAY가 공동기획한 ‘2010 국가 리더십 탐색’에 참여했다. ‘누구를 찍느냐’의 평면적 평가를 넘어 정치적 선택의 다양한 포인트를 찾고자 했다. 세상에 완벽한 연구는 없다. 조사 대상인 지도자에 대해 응답자가 충분히 알지 못한다면 미디어에 투영된 이미지에 좌우될 수 있다. 학계나 미디어가 선호하는 ‘좋은 말들’에 맞춘 인물에게 유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인기와 표의 현실이다. 현실의 한계에는 남다른 도전의 가능성이 숨어 있다. 좋은 정책이 대중적 지지를 얻지 못한다면 정책에 담긴 정서적 공감 요인을 찾으면 된다. 미디어가 몰라준다면 미디어의 현실에 맞는 메시지를 만들고 나아가 새로운 소통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좋은 말들’을 넘어서 불편한 진실을 끌어내려면 더 큰 신뢰를 쌓아야 한다. 시장이 몰라주는 신제품을 주주들의 반대를 뚫고 만들려는 경영자와 마찬가지다.

남다른 노력의 대가는 크다. 세상은 숨은 요구를 찾아낸 전혀 다른 차원의 지도자에게 환호한다. 재미있는 가수의 장을 연 신신애, 적나라한 독설이 등장하는 드라마 ‘공부의 신’을 생각해 보라. 이번 리더십 탐색에는 몇 가지 힌트가 담겨 있다. 시대정신과 도전, 상호작용적 리더십으로의 변화에 담긴 세상의 요구다.

지도자에 대한 평가는 개인적 역량과 함께 그가 대표하는 조직이나 집단에 대한 판단을 담고 있다. 연대와 협력을 통해 지도자의 외연은 더 넓어진다. 따라서 지도자에 대한 선택도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1997년 대선 당시 김대중-김종필-박태준의 DJP연합은 정파 간 강·약점과 지지 기반을 조합한 전형적인 사례다. 당내 경선은 그 자체로 흥행적 요소와 함께 연대 구조의 주연과 조연을 정하는 캐스팅 게임의 성격을 띠고 있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관객을 이끄는 나훈아의 무대가 힘들다면, 여러 가지 매력을 모아서 다양한 팬을 만든 소녀시대도 대안이 아닐까? 이번 리더십 탐색에서 담지 못한 부분이다.

인텔 CPU 칩이 탑재된 컴퓨터에는 인텔 마크가 찍혀 있다. 누구와 함께 하느냐의 파트너십을 소비자에게 밝히는 것이다. 기업 공시에서는 경영진의 면모를 공개한다. 최고경영자(CEO)가 어떤 사람들과 함께 일하느냐를 보이기 위해서다. 신제품이나 새 영화를 공개할 때도 어떤 업체들과 무엇을 같이 했는지 밝힌다. 국가 리더십의 경우는 어떤가? 선거 때면 병풍처럼 잔뜩 늘어선 사람들, 그들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려는지 아무도 모른다. 연이은 지지 선언도 마찬가지다. 세(勢) 과시와 카메라 효과가 목적이라면 미국 선거에 나오는 ‘풍선 든 방청객’이 나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지지해서 나선다면 무엇을 왜 하려는지 밝히면 어떨까? 권력의 영광을 누리기보다 정책과 신념의 파수꾼으로서 책임을 진다면 진정성은 더욱 빛날 것이다. 자리를 미리 나누는 ‘그림자 정부’와 다른 점이다. 너나 없이 한번 뜨려고 그럴듯한 아이템을 들고 나와서 요란한 세상에 ‘쓸데없는 짓을 못하게 막겠다’는 분도 필요하지 않을까? 아무튼 책임을 져야 하니 명을 받들어야 하는 가신들과는 다르고, 정부나 국회에도 제 목소리를 낼 것이다. 전직 총리, 대학 총장이 다가 아니다. 회사원, 택시기사, 맞벌이 주부 같은 일하는 사람들이 함께 나서면 더 많은 뜻을 담아갈 수 있다. 광고 영상 한번 찍고 끝내지 말고 이름에 책임을 지자는 얘기다.

물론 고민도 있다. 이치에 안 맞는 ‘친서민 정책’들이 인기스타의 이미지에 얹혀서 포장되면 그 책임을 밝힐 수 있을까? 일하는 경영자는 회사에 있고, 홍보만 요란한 얼치기들만 인기 조연배우로 바쁠지도 모른다. 그러나 판단과 선택의 최종 책임은 결국 국민에게 있다. 지도자와 ‘그의 팀’을 편견과 왜곡을 넘어서 판단하는 역량, 이를 위한 바람직한 사회적 논의 구조가 중요한 이유다. 이번 리더십 탐색의 숨은 교훈이기도 하다.

박찬희 교수 중앙대 경영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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