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쉰들러'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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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국전쟁 때 전쟁고아 1천여명을 전장에서 구한 미국인 '대부(代父)' 가 그들을 만나러 50년 만에 한국땅을 다시 찾는다.

6.25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한국에서 미 제5공군 군목으로 활동한 러셀 브레이즈델(미국 뉴욕 거주.당시 중령). 올해 91세다.

난리통의 서울거리에서 고아들을 데려다 돌봤고 북한군이 다시 점령하기 전 그들을 제주도로 피신시킨, 숨겨진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제주도 공수 작전' 으로 이름붙여졌던 50년 12월의 기억을 찾아 26일 서울에 오는 그는 이렇게 당시를 회상한다.

◇ 훔친 트럭으로 인천에〓그 겨울, 인민군이 다시 남하한다는 소문이 들리면서 서울은 다시 피란행렬로 어수선해졌다.

전쟁고아 돌보는 업무를 맡은 브레이즈델 중령은 새벽마다 트럭을 몰고 거리에 나가 오갈곳 없는 고아 10~20명씩을 태워왔다.

그렇게 모아 종로의 한 초등학교 건물에 수용한 고아들이 1천여명. 이제 이들을 안전한 제주도로 피란시키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당시 이기붕(李起鵬)서울시장으로부터 "인천항에 배 한척을 대기시켜 놓겠다" 는 말을 듣고 훔친 트럭으로 아이들을 십여차례 인천으로 실어 옮겼다. 그러나 대기 중인 배는 시멘트를 가득 실은 낡은 것이어서 아이들을 태우기 어려웠다.

◇ 긴박했던 제주행〓아이들을 부근 학교 건물로 옮긴 뒤 그는 다시 서울에 주둔 중인 미공군본부로 갔다. 본부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로저스 준장에게 처지를 설명하고 도움을 호소했다.

"준장은 '현재 임무가 주어지지 않은 C-54기 비행단이 있다' 며 '아이들을 언제까지 김포 비행기지로 데려올 수 있느냐' 고 물었지요. " 브레이즈델의 회고다.

비행단이 임무를 받기 전에 빨리 아이들을 김포로 실어와야 했다.

그러나 또다시 교통편이 문제였다. "인천으로 돌아오니 때마침 부두에서 해군이 군용트럭을 하역 중이었지요. 내 휘장을 보여주며 '강제로' 트럭 14대를 빼앗았어요. " 그는 아이들을 김포로 싣고 갔다.

1천여 고아들은 16대의 비행기에 나뉘어 실려 제주도에 안착했다.

◇ 한국보육원으로〓제주도 관계자의 도움으로 제주농고 교사(校舍)가 고아들의 임시 수용소가 됐다. 브레이즈델은 14일 "그후 서울에 쏟아졌던 폭격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며 "어떻게든 아이들을 대피시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고 기억했다.

고아들은 이승만(李承晩)당시 대통령의 부탁으로 사회사업가 황온순(黃溫順.여.당시 50세)씨가 넘겨받아 51년 초 한국보육원을 세웠다.

◇ 황온순 원장과의 만남〓5개월 뒤 그는 일본 사령부로 발령받아 떠났다. 그 뒤 52년 일본을 떠나기 전까지 옷.식료품.의약품 등을 갖고 제주도의 아이들을 두차례 찾았다.

이때 黃원장과의 만남도 이뤄졌다.

당시 제주도에서의 고아 보육 스토리를 56년 미국 유니버설사가 제작해 히트를 친 영화가 '전송가(Battle Hymn)' 다.

그러나 제주 공수와 그 후의 보육을 도왔던 딘 헤스(당시 소령)의 회상으로 엮은 영화 속에 브레이즈델의 활약은 등장하지 않았다.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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