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포럼] 왜 닉슨은 실패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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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연초 영수회담 때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야당이 나를 실패한 대통령으로 만들려 한다" 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느 누구도 실패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노벨상까지 탄 金대통령으로서는 '실패한 대통령' 에 대한 강박관념이 누구보다 클 것이다.

*** 최악의 대통령으로 평가

미국 대통령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대통령들의 랭킹을 곧잘 매기곤 한다. 하버드대의 아서 슐레진저 교수는 역사학자들에게 설문을 돌려 대통령의 순위를 매겼다.

'미국 10대 최악의 대통령들' 이라는 저서를 낸 나탄 밀러는 "재임기간 중 누가 가장 나라를 망쳐 놓았는가" 라는 기준에 따라 최악의 10인을 뽑았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모든 조사에서 불명예스럽게 최악의 대통령 중의 하나로 꼽히곤 한다.

밀러는 닉슨이 "백악관에 들어가기 위해 가장 준비가 잘된 대통령 중의 하나였다" 고 평가했다.

그는 상.하원 의원을 포함해 아이젠하워 대통령 밑에서 8년간 부통령을 지냈다. 그는 위대한 정치인의 행적에 대한 공부도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그가 존경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을 본받기 위해 그 딸을 불러 아버지의 대통령 시절 얘기를 듣기도 하고, 심지어 루스벨트가 골프를 잘 쳤다는 얘기를 듣고 골프도 배웠다.

첫 임기 때 닉슨은 괄목할 업적을 냈다. 최초로 공산 중국과 국교를 맺었으며 전략무기제한 협정을 성공시켜 동서화해의 길도 열었다.

주간지 타임은 그를 56번이나 커버 스토리로 등장시켰다. 이런 그가 왜 최악의 대통령으로 몰락했을까.

닉슨.포드.레이건.클린턴 대통령 등 4대째 백악관 참모로 일했던 데비드 거겐은 최근 '권력의 증인(Eyewitness to Power)' 이라는 저서에서 닉슨의 몰락을 분석했다(65~1백4쪽). 그는 닉슨의 실패가 닉슨 자신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다.

닉슨은 복수심이 강하고, 음흉스러우며, 성을 잘 내고, 불안한 성품의 소유자로서 신뢰성이 매우 낮은 인물이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손 볼 사람 3백명 리스트' 를 작성했으며 자신은 물론 참모들에게까지 필요에 따라서는 거짓말도 거리낌없이 하게 만든 마키아벨리적 인물이었다.

워터 게이트 사건도 거짓말로 사건을 은폐시키려 했기 때문에 커진 사건이다.

이러한 자신에 대해 닉슨은 "나는 악당이 아니다" 고 강변했지만 같은 당의 베리 골드워터 상원의원은 공개적으로 "내가 만난 사람 가운데 가장 부정직한 사람" 이라고 비판했으며, 밥 도울 상원의원은 그를 "악마" 라고까지 불렀다.

그는 비뚤어진 권력관을 가지고 있었다. 권력과 리더십을 구별하지 못했다.

리더십이라는 것은 최정상의 사람이 권력을 사용하는 데서 생겨나며 지도자의 의지를 국민에게 부과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정치관은 그를 항상 '적과 동지' 로 구별하게 만들었다. 닉슨은 기득권 계층이 나라를 망친다고 믿고 있었다.

똑똑했지만 가난해 지방대학을 나온 그는 아이비 리그 출신을 비롯한 전통적인 미국 사회의 리더십 계층을 증오했다.

닉슨은 언제나 "나의 단순한 실수를 가지고 적들은 나를 파멸로 몰아넣는다" 고 불평했다.

비뚤어진 권력관은 벌거벗은 힘의 행사로 나타나 언론인은 물론 자신의 비서와 참모들의 대화까지도 불법 도청시켰다.

*** 권력과 리더십 구별못해

그는 언론을 적대시하고 기피했다. 그는 백악관 기자들이 비서실 쪽으로 오지 못하도록 통제한 대통령이었다.

그의 연설문 작성자였던 빌 사파이어는 "그는 언론이 또하나의 권력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언론을 싫어하고 틈만 있으면 언론을 때렸다" 고 회고했다.

그는 비판적인 언론에 대해서는 보복했다. 워싱턴 포스트가 워터 게이트 사건을 터뜨리자 그는 연방방송위원회를 통해 이 신문이 운영하는 방송국의 허가 갱신을 불허토록 압력을 행사했다.

그에게 비판적인 CBS방송 등 3대 방송을 독과점법으로 제소하고, 대통령을 비판하지 못하도록 협박했다.

비판적인 신문을 골라 이들이 운영했던 3개의 방송국에 대해서는 허가를 취소했다. 미국에서 언론과 정부가 가장 적대적인 시기였다.

그러나 언론에 대한 횡포가 가장 큰 정치적.개인적 약점이 돼 그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그는 검찰총장.비서실장 등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자신의 참모를 가장 많이 감옥에 보낸 대통령으로 기록되고 있다.

문창극 <미주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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