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을 쫓아다니며 제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넣어달라고 읍소했다. 그랬더니 가진 건 책상과 전화기밖에 없는 당신들이 무슨 수로 회생하느냐고 조롱하더라. 무역회사의 수출역군이란 자부심 하나로 살았는데… 엄청난 자괴감이 들었다.”
대우그룹 해체 후 11년이 흐른 2010년.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온 대우인터내셔널의 상황은 당시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달라졌다. 워크아웃은 2003년 말 일찌감치 졸업했다. 실적도 계속 좋아졌다. 지난해 11조1480억원의 매출을 올려 1713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상사 수출 부문만 놓고 보면 국내 1위다.
지분의 68.15%는 한국자산관리공사·한국수출입은행 등의 공동매각협의회가 갖고 있다. 협의회는 지난달 말 주식매각 공고를 냈다. 24일이 입찰의향서 마감이다. 인수가격이 3조~4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포스코가 인수에 가장 적극적이다. 포스코 정준양 회장은 공개적으로 “대우인터내셔널 인수를 가장 우선순위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국내 상사 중 포스코의 철강 수출 물량을 가장 많이 취급하고 있다. 전체 매출의 약 19%가 포스코와의 거래에서 나온다.
하지만 포스코가 대우인터내셔널을 탐내는 진짜 속내는 따로 있다. 대우가 과거 ‘세계경영’이란 이름으로 전 세계에 깔아놓은 네트워크를 접수하는 게 주목적이다. 60여 개국에 현지법인·지사 등 106개 해외거점을 갖고 있다. 거래선은 180여 개국 6000여 곳에 달한다. 나이지리아·리비아 등 12개국은 한국과 수교도 하기 전에 진출했다. 대우인터내셔널 관계자는 “중국·동남아의 시골 마을에서 대우 로고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 적이 많다”고 말했다.
각종 자원개발의 경쟁력도 여기서 나왔다. 대우인터내셔널은 페루(원유)·오만(가스)·베트남(가스)에서 에너지를 상업 생산하고 있고, 미얀마 가스전의 운영권도 갖고 있다. 마다가스카르에선 니켈광 개발에 참여 중이다. 포스코의 한 임원은 “대우인터내셔널의 네트워크를 이용하면 자원개발, 시장개척과 세계 철강업계의 M&A 동향 파악 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포스코의 의지가 워낙 강해 인수전에 뛰어들 다른 회사가 나올지 여부다. 경쟁이 안 돼 유찰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공동매각협의회에서 지분이 가장 많은 자산관리공사(35.53%) 관계자는 “입찰에 한 곳만 참여할 경우 어떻게 할지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김선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