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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값 뛴 대우 종가 …‘세계경영’ 부활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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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채권단을 쫓아다니며 제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넣어달라고 읍소했다. 그랬더니 가진 건 책상과 전화기밖에 없는 당신들이 무슨 수로 회생하느냐고 조롱하더라. 무역회사의 수출역군이란 자부심 하나로 살았는데… 엄청난 자괴감이 들었다.”

대우인터내셔널의 한 임원이 들려준 1999년 상황이다. 이 회사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67년 설립한 대우실업이 모태다. 82년 대우건설과 합쳐져 ㈜대우의 무역 부문이 됐다. 대우그룹이 99년 워크아웃을 신청한 뒤 이듬해 현재의 이름으로 다시 갈라져 나왔다. 지금도 ‘대우’의 상표권을 갖고 있는 종가다.

대우그룹 해체 후 11년이 흐른 2010년.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온 대우인터내셔널의 상황은 당시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달라졌다. 워크아웃은 2003년 말 일찌감치 졸업했다. 실적도 계속 좋아졌다. 지난해 11조1480억원의 매출을 올려 1713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상사 수출 부문만 놓고 보면 국내 1위다.

지분의 68.15%는 한국자산관리공사·한국수출입은행 등의 공동매각협의회가 갖고 있다. 협의회는 지난달 말 주식매각 공고를 냈다. 24일이 입찰의향서 마감이다. 인수가격이 3조~4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포스코가 인수에 가장 적극적이다. 포스코 정준양 회장은 공개적으로 “대우인터내셔널 인수를 가장 우선순위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국내 상사 중 포스코의 철강 수출 물량을 가장 많이 취급하고 있다. 전체 매출의 약 19%가 포스코와의 거래에서 나온다.

하지만 포스코가 대우인터내셔널을 탐내는 진짜 속내는 따로 있다. 대우가 과거 ‘세계경영’이란 이름으로 전 세계에 깔아놓은 네트워크를 접수하는 게 주목적이다. 60여 개국에 현지법인·지사 등 106개 해외거점을 갖고 있다. 거래선은 180여 개국 6000여 곳에 달한다. 나이지리아·리비아 등 12개국은 한국과 수교도 하기 전에 진출했다. 대우인터내셔널 관계자는 “중국·동남아의 시골 마을에서 대우 로고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 적이 많다”고 말했다.

직원들의 글로벌 경쟁력도 탄탄한 편이다. 무역업무를 하는 직원의 40%가 해외근무 경험이 있다. 과장급 이상으로 좁히면 78%나 된다. 김우중 전 회장은 현직에 있을 때 “야심 있는 세일즈맨은 항상 아프리카·중동 등 험한 곳에 먼저 보낸다”며 “몇 년간 단련시킨 뒤 미국·영국 등 선진국으로 옮기면 두둑한 배짱이 생긴다”고 말하곤 했다.

각종 자원개발의 경쟁력도 여기서 나왔다. 대우인터내셔널은 페루(원유)·오만(가스)·베트남(가스)에서 에너지를 상업 생산하고 있고, 미얀마 가스전의 운영권도 갖고 있다. 마다가스카르에선 니켈광 개발에 참여 중이다. 포스코의 한 임원은 “대우인터내셔널의 네트워크를 이용하면 자원개발, 시장개척과 세계 철강업계의 M&A 동향 파악 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포스코의 의지가 워낙 강해 인수전에 뛰어들 다른 회사가 나올지 여부다. 경쟁이 안 돼 유찰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공동매각협의회에서 지분이 가장 많은 자산관리공사(35.53%) 관계자는 “입찰에 한 곳만 참여할 경우 어떻게 할지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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