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같은 정치가 한국판 '웨스트 윙' 탄생 걸림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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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호 22면

지난해 방송된 ‘시티홀’은 가상의 도시 ‘인주시’를 배경으로 한 정치 소재 드라마다. [중앙포토]

드라마는 재미있어야 한다. 정치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TV에서 정치를 다룬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던가 잠시 되짚어보았지만 지난해의 '시티홀' 외에는 딱히 기억나는 게 없었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제3공화국’ ‘모래시계’가 그렇게 불릴 수 있을까.그러다가 떠오른 건 '선덕여왕'의 미실과'불멸의 영웅'의 이순신이었다. 물론 정치 드라마로 보긴 어렵다. 역사 드라마, 대하 드라마로 분류되고 비슷한 성격의 드라마는 많이 있었다. 하지만 유독 이 둘을 떠올린 것은 왕을 중심으로 하는 권력 다툼보다 소재와 주제를 좀 더 넓힌 작품으로 느껴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정치 현장에서 본 한국 정치 드라마

얼마 전 드라마라곤 전혀 볼 것 같지 않은 정치권의 원로 한 분이 ‘고현정의 힘’을 이야기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그 분을 보면서 내가 느낀 건 고현정의 힘만이 아니라, 드라마의 힘이었다. 물론 나 역시 고현정이라는 연기자를 참 좋아한다. 그녀가 TV로 돌아와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기까지 하다. 돌아와서 출연한 작품 하나하나가 고현정스러웠다. 까탈스럽게 고른 듯하면서도 착한 여자, 예쁜 여자를 포기하고 ‘망가지기’를 서슴지 않는 용감함. 내가 느끼는 고현정스러움은 그것이다. 김명민도 고현정 못지않게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고 있는 특별한 연기자다. 고현정과 김명민의 힘은 미실과 이순신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두 드라마의 소재와 대본의 짜임새도 주목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 정도의 짜임새로 역사가 아닌 현실의 정치를 소재로 한다면…"이라고 아쉬워할 법도 하다. 이처럼 좋은 연기자, 작가도 있고 드라마 만드는 기술도 좋은데 왜 많은 이들이 한국에서는 재밌고 좋은 정치 드라마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할까. 거기에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정치가 그다지 재미없는 분야로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요즘에 와서야 음식이 드라마의 소재가 됐다. '식객'에서 '파스타'까지. 음식이 밥상 차리는 엄마들만이 아니라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된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미술은 아직 본격적으로 드라마의 대상이 된 적이 없다. 미술품 경매회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있었고, 조선시대의 화가 신윤복이 지난해 김민선과 문근영을 통해 영화와 드라마의 인물로 등장한 게 거의 처음이 아닐까 싶다. 이렇듯 우리 드라마에는 아직 미개척 분야가 많다. 어떤 재료가 소설을 통해서건, 만화를 통해서건 어느 정도 사람들 눈길을 끌었을 때 드라마는 그것을 ‘밥상’에 올리는 게 아닌가. 드라마는 그때그때 사람들의 취향, 관심사를 담아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치는 지금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재미의 대상인가.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사람들이 욕하면서도 끝까지 본다는 막장 드라마와 조금 닮은 꼴은 아닌가. 정치는 상상력이다. 상상력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꿈꾸는 사람이 곧 정치인이고 그는 유권자에게 꿈을 판매하는 서비스 세일즈맨기도 하다. 드리머(dreamer)와 드라마(drama), 발음도 비슷하지만 드라마 역시 상상력 혹은 환상을 판매하는 장르가 아닌가 생각한다. 작금의 정치가 상상력을 자극하는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상상력이 말라가는 시기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며 던진 질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정치 드라마는 "안 돼!"라고 결론지을 필요는 없다. 생각의 방향을 조금만 틀면 꼭 그렇지는 않기 때문이다.

좀 더 가까운 현실을 다루는 정치 드라마의 영역은 우리에겐 아직은 공백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10·26과 5·23의 경험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드라마는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 우리 정치에는 이처럼 드라마적 상상력을 훌쩍 뛰어넘는 요소, 드라마의 소재거리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실존 인물들이 연관되면, 아직은 편치 않게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대본을 쓰고 제작하는 쪽에서도 불편하지만, 보는 쪽에서도 불편하다.

여기엔 물론 이유가 있다. 민주적 절차와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는 상황에서 경쟁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고, 불과 얼마 전까지도 경쟁보다는 전쟁에 가까운 정치 과정을 거쳐왔고, 지금도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선 선거와 투표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어떤 시도도 터부시된다.

정치를 소재로 한 미국 드라마에서 특정 정당이나 정파·정치인에게 유리하다거나 불리하다는 이유로 드라마가 영향을 받았던 일은 별로 없었던 것으로 안다. 불만은 있을 수 있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란 인식이 분명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 시절, 다큐멘터리 드라마 감독 한 분이 청와대에서 일하겠다고 지원한 적이 있다.

그리해서 제대로 된 정치 드라마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대통령이 어떻게 일하는지 가까이에서 볼 기회를 가졌다. 작가라면 얼마든지 정치를 소재로 다뤄보고 싶은 의욕을 가질 법하다. 오해나 핍박받지 않을 여건만 된다면 말이다. 그 분이 꿈꾸었던 좋은 정치 드라마를 언젠가 만들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물론 이것이 가능하려면, 정치적 색깔과 이념이라는 거대한 강을 헤엄쳐 건너갈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만드는 쪽에서건, 보는 쪽에서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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