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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밴쿠버] “야 포즈 잘 잡아, CF 들어올지 아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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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의 자랑스러운 얼굴들. 왼쪽부터 이승훈·이상화·모태범 선수. 사진은 모태범이 이상화 뒤로 V자를 그리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 셋은 한국체대 07학번 동기생이다. [밴쿠버=임현동 기자]

“야, 사진 포즈 잘 잡아야 해. 혹시 아니. 이거 찍고 CF 들어올지. 아, 난 커피 CF 찍고 싶다. 나하고 잘 어울리지 않니?”(이상화)

“난 맥주 CF.”(모태범)

“음, 난 뭘 하지? 그래 난 은행 CF다.”(이승훈)

끊임이 없었다. 그리고 통통 튀었다. ‘쾌속 세대’의 수다는 유쾌했다.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초반 금메달 2개, 은메달 2개를 합작해내며 대한민국 선수단의 쾌속 질주를 주도한 한국체대 체육학과 07학번 동기 모태범(빙속 남자 500m 금·1000m 은), 이상화(여자 500m 금), 이승훈(남자 5000m 은)이 본지와의 인터뷰를 위해 18일 오후 10시(현지시간) 선수촌 앞 커피숍에 모였다.

이날 여자 1000m 경기를 마지막으로 일정을 마친 이상화의 표정이 밝은 것은 이해가 되지만 아직 경기가 남아 있는 모태범과 이승훈마저 해맑은 얼굴로 수다를 떠는 것은 선배들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이들은 기자에게도 처음부터 스스럼없이 “언니” “누나”라고 불렀다.

“진짜 우리 셋이 다 이렇게 (메달) 딸 줄은 몰랐는데, 그치(그렇지)?”(이상화·이하 상)

“응. 우리 여기 오기 전에 ‘제발 다 메달 따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했던 거잖아.”(이승훈·이하 승)

“야. 뭐 이런 일이 다 있냐. 솔직히 깜짝 놀랐다.”(모태범·이하 모)

“언니, 저 점퍼(모태범과 이승훈이 입고 있는 점퍼)가 이(예)뻐요? 외국 사람들은 저 점퍼가 그렇게 이쁘대요. 달라고들 난리예요.”(상)

“그러게, 이거 입고 다니니까 외국 사람들 디게(되게) 좋아하더라.”(모)

“우리 초딩(초등학교) 때부터 원래 친했어요. 상화랑 태범이는 초등학교 동창(은석초)이고, 저는 초등학교는 달랐는데 그래도 같이 스케이트 탔으니까 친했죠.”(승)

- 인터넷도 보나?

“매일 봐요. 악플(욕이나 비난하는 댓글) 장난 아니던데. 나랑 사귀었다가 헤어졌는데 후회한다는 댓글도 있던데요. 완전 웃겨요.”(상)

“진짜 악플 많더라고요. ‘나, 니 형이다. 태범아’ 이런 것도 있고.”(모)

지금 가장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물어보니 이구동성으로 “라면”이라고 외친다.

“태범이랑 한국 가자마자 제일 먼저 태릉선수촌에 있는 라면 자판기에서 라면 다 먹어치워 버리자고 했어요. 라면이 정말 먹고 싶네요.”(승)


“그래요. 그리고 여기 못 온 친구들하고 다 같이 만나서 커피숍 가서 하루 종일 수다 떨고 싶어요.”(모)

“저 밀가루 음식 디게 좋아해요. 라면도 좋아하고. 제 별명이 빵돌이예요. 빵 진짜 좋아하는데.”(승)

“저도 빵 정말 좋아해요.”(상)

“나도 빵 좋아하는데. 그러고 보니 우리 모두 빵 좋아하는구나.”(모)

-한국 가서 셋이 다 함께 하고 싶은 건?

“술 먹는 거요.(웃음) 다들 술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그런 분위기에서 얘기 나누고 싶어요.”

음료수를 주문하는데 모두 심사숙고다. 커피는 다들 안 마신다고 했다.

“승훈이랑 저는 경기 남아 있으니까 아무래도 좋은 거 먹어야죠. 낮에는 괜찮은데 밤에는 가려 먹어야 해요.”(모)

“근데 누나 이거 물이죠? 탄산수인가? 이런 건 먹어도 괜찮죠?”(승)

“전 경기는 끝났지만 그래도 그냥 커피는 안 마실래요.”(상)

-모태범 패션 센스가 좋아 보이는데.

“저 사복 입는 거 좋아해요. 남들이랑 똑같은 거 싫어해서 머리도 특이하게 하고. 근데 길어서 더벅머리가 돼버렸어요. 머리 새로 할 거예요. 저한테 어울리는 새 머리로.”(모)

“저도 한국 가면 머리에 신경 쓸 거예요.”(승)

“저 미디어데이 때 머리 새로 했느냐는 질문 받았어요, 새로 한 거 아니었고요. 그냥 머리 스타일을 자주 바꾸는 편이에요.”(상)

밴쿠버 올림픽선수촌 부근 한 커피숍 앞에서 대회 자원봉사자들이 한국의 메달리스트들을 알아보고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승훈·이상화·모태범 선수. [밴쿠버=임현동 기자]


-서로 경기할 때 응원했나. 

“우리 경기 서로 다 못 봤어요. 누구 경기하면 누구는 훈련하고 있고, 누구 경기하면 누구는 또 메달 세리머니 가야 하고 해서요. 그러고 보니 진짜 서로 한 번도 못 봤네. TV로만 보고.”(상)

“태범이는 메달 사진 찍는다고 진짜 금-은메달 두 개 다 가지고 왔냐? 나 같으면 금메달만 가져오겠네. 와 너 짱(최고)이다.”(상)

“난 두 개 땄잖아. 요즘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다. 근데 난 여기서 끝일 것 같아. 승훈이는 하나 더 딸 걸. 승훈아 금색 따라.”(모)

“아 정말, 그러고 싶다. 누나, 기도해 주세요.”(승)

-이상형은?

“소녀시대의 윤아요. 이쁜 여자가 좋아요. 남자 다 그렇지 않나?”(승)

“저도 소녀시대 좋아해요. 후후후.”(모)

-서울에서 자주 가는 곳 있나? ‘여기 오면 나 만날 수 있다’ 이런 거.

“저는 집이 성산동이라 홍대 주변? 학교에 자주 있으니 한체대에도 자주 있겠네요.”(승)

“딱히 없는데 학교 주변 돌아다니죠, 저도 한체대네요.”(모)

-모태범하고 이상화 열애설 났던데?

“진짜 웃겨 죽는 줄 알았어요. 얘네 안 그런 거 제가 잘 알거든요.”(승)

“그러게요. 아닌데. 전 여자친구 없는데. 사실 훈련하면서 힘들 때는 여자친구 있었으면 했거든요. 근데 지금은 여자친구 전혀 생각이 안 나요. 하나도 안 부러워요, 여자친구 있는 사람.”(모)

“왜 그런 말이 났지? 우리 손에 반지 보고 커플링이라고들 하던데, 왼손의 반지는 아빠가 대학 들어갈 때 사준 거고 오른손 반지는 엄마가 준건데.”(상)

-서로가 상대방을 평가한다면?

“승훈이는 진짜 생각이 깊어요. 생각이 너~~~~~~~~무 깊어요. 태범이는 끼 많고 운동 잘하죠.”(상)

“상화는 털털하고 씩씩하고 잘 웃죠. 태범이는 예의 바르고 어른들한테 잘하고.”(승)

“승훈이는 생각이 깊고, 어린애 같지 않고 진지해요. 상화는 강해 보이는데 은근히 마음이 약해요. 얘는 어디 가도 잘 해요. 하도 비벼서 손바닥에 지문이 없달까. 하하하.”(모)

-이상화 방에 있는 달력에 ‘인생역전’이라고 써 있던데.

“아 그거. 1월에 일본 오비히로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갈 때 달력에 체크하다가 한 장을 넘기니 저 경기하는 날이 보여서 그냥 써둔건데. 사실 ‘한 방’이죠.”

-모태범은 차가 폴크스바겐 골프라면서? 운전면허들은 다 있나?

“전 당근(당연히) 있고.”(모)

“저도 있어요.”(승)

“저는 없어요. 게을러서 그렇죠. 이제 한국 가면 면허 따야지.”(상)

-이상화 예쁘다고 난리던데,

“웃겨요. 이쁘다 못생겼다 싸우는데. ‘운동선수 치고 이쁘다’는 말은 한 번 들어봤어요. 어릴 때는 이쁘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는데.”(상)

-교생 실습 나간다고 하던데.

“3월에 남양주 덕소고로 교생 나가요. 사실 제가 선생님이 된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얘기죠. 애들 만날 생각에 약간 긴장이 돼요. 아직 뭘 가르쳐야 할지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뭘 가르치든 재미있게 가르치고 싶어요.”(모)

“저도 3월에 모교인 휘경여고로. 애들이 말 안 들으면 어떻게 해요?”(상)

“전 4월에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 나갈까 생각 중이어서 그냥 9월로 미뤘어요.”(승)

그러자 모태범과 이상화가 동시에 “야, (선발전) 나가지 마. 뭐 하러 나가. 스피드 그냥 해”라고 외쳤다. 톡톡 세대들의 수다에 밴쿠버의 밤은 깊어만 갔다.

밴쿠버=온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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