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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행기 빌딩 돌진 … 텍사스에 9·11 악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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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8일 오전 10시(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상공에 파이퍼 체로키 PA-28 경비행기 한 대가 낮게 날고 있었다. 아파트 위를 가까스로 넘어갈 정도로 저공비행하던 비행기는 오스틴 북부의 연방 국세청(IRS) 7층짜리 청사에 도달하자 주저없이 이 건물 2층으로 돌진했다. 천둥소리와 함께 화염이 순식간에 건물을 뒤덮었다. 창문은 산산조각이 나 흩어졌고 검은 연기기둥이 하늘로 치솟았다. 수백m 밖에서 이 광경을 지켜본 미셸 산티바네스는 “폭발 진동을 내가 있던 곳에서도 느꼈다. 영락없이 9·11 테러 때의 공포를 다시 떠올리게 한 장면이었다”고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의 연방 국세청 청사에 18일(현지시간) 경비행기가 돌진하면서 건물 전체가 화염과 연기에 휩싸여 있다. 이 사고는 과세에 불만을 품은 50대 남성이 경비행기를 몰고 충돌한 자살 공격으로 밝혀졌다. 조종사와 건물 안에 있던 직원 두 명이 숨졌다. [오스틴 AP=연합뉴스]

사건을 조사한 미 당국은 이 충돌로 조종사 조셉 앤드루 스택(53)과 건물에서 일하던 직원 2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최소 13명이 부상했고, 2명은 위중한 상태다. 이 건물에 있던 190명의 IRS 직원 대부분은 창 밖으로 뛰어내리거나 비상구로 탈출해 목숨을 건졌다.

미 국방부는 곧바로 F-16 전투기 2대를 출격시켜 상공을 정찰했다. 테러 가능성에 대비한 것이었다. 상황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즉시 보고됐다. 해당 비행기는 이날 오전 8시40분에 오스틴에서 48㎞ 떨어진 조지타운시 공항을 출발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국은 스택이 과세 정책에 불만을 품고 단독 범행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그가 비행기를 몰기 직전 인터넷에 올린 장문의 글이 결정적 단서였다. “당신이 이 글을 읽는다면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것”이라며 시작된 글은 국세청과 미 정부의 과세정책에 대한 강력한 불만으로 이어졌다. 글은 “빅 브러더 국세청 인간들아, 이제 다른 걸 시도해 보자. 내 살점을 가져가라, 그리고 잘 자라”로 끝났다. 글 뒤엔 자신의 서명과 함께 “(1956~2010)”이라고 써 죽음을 암시했다. 스택은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 후 비행기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스택은 “IRS와의 분쟁으로 자신의 돈 4만 달러(약 4600만원)와 10년 세월을 날렸다”고 글에서 언급했다. 캘리포니아주 기록에 따르면 그는 두 차례 소프트웨어 회사를 설립했다. 하지만 과세 당국과의 마찰로 2000년과 2004년 영업을 정지당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스택이 1996년과 2002년 총 1153달러의 세금을 체납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후 줄곧 수입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첫 번째 아내는 99년 IRS에 12만6000달러의 부채를 신고하고 파산했다.

오스틴의 IRS 건물은 95년에도 과세에 항의하던 찰스 레이 폴크란 인물이 폭파를 기도한 적이 있었다. 조세 저항은 미 국민의 주요한 반정부 정서 중 하나라고 AP는 전했다. 최근 몇 년 동안에도 IRS 직원이 폭력이나 살인의 표적이 된 사건이 여러 차례 발생했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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