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부시 경제팀의 교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지금 이곳 워싱턴은 조지 W 부시 새 대통령을 맞이할 준비로 온 도시가 흥분에 들떠 있는 것 같다.

워싱턴의 신문과 TV에서는 매일 대통령 취임식 준비상황을 자세히 보도하고 국회 의사당에서는 새 행정부 각료들의 인준청문회가 활발히 열리고 있다.

필자가 가르치고 있는 조지 워싱턴대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백악관 앞에는 오늘도 가벼운 싸락눈이 내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많은 목공들이 취임 축하행진 열람대를 신축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8년 만에 맞는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의 정권교체 의미도 크겠지만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경영학석사(MBA)학위를 가진 새 대통령이 탄생한 것도 이채롭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부시 대통령 당선자는 정치인이기 이전에 사업가로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는 예일대학을 졸업한 후 필자의 모교이기도 한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고 텍사스로 내려가 처음 60만달러(약 7억2천만원)를 투자, 한 야구팀을 인수해 큰 야구장을 신축하는 등 팀운영을 잘 한 결과 10여년 후에는 1천5백만달러(1백80억원)를 받고 팔아넘겨 개인적으로 경제적 안정을 이룩했다.

그후 정치에 입문해 텍사스 주지사에 당선 됐다.

성공한 사업가답게 부시의 새 경제팀도 기업경영에 통달한 인사들로 구성됐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재무부 장관으로는 미국 최대 알루미늄 회사 회장이었던 사람을 영입하고 상무부 장관으로는 텍사스의 한 석유.가스회사 회장을 선택했다.

딕 체니 부통령 당선자도 8년 전 국방장관직을 그만둔 후 1백20여개국에 10만명의 직원을 가진, 연 매출 1백50억달러(18조원)의 핼리버튼이라는 석유장비 제조회사의 회장으로 봉직했다.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도 제임스 울펀슨 현 세계은행 총재와 마찬가지로 미국 금융의 중심지인 월가에서 크게 성공한 후에야 정부에 들어왔다.

이처럼 미국의 경제팀 수장(首長)들이 한결같이 관료출신이 아니라 성공한 상업가 출신들이라는 데 미국 경제발전의 비결이 있다 하겠다.

필자가 가끔 고국을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가장 큰 체감상의 차이점(culture shock)은 우리나라가 아직도 이조 봉건시대 때와 별 차이 없는 철저한 관존민비(官尊民卑)적 사회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가장 똑똑한 엘리트 청년들은 관료생활보다 월가나 컨설팅회사.민간회사 등으로 진출해 전 세계를 시장삼아 실력껏 사업을 하려고 노력한다.

이들은 사업보국(事業報國)의 신념으로 열심히 일해 성공하면 그 때야 국가가 필요한 곳에 낮은 공무원 보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헌신봉사하는 것이 상례화돼 있다.

따라서 미국 사회에는 한국과는 달리 사업가들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풍토가 자리잡혀 있다.

반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표방한다는 우리나라에서는 진정한 시장경제를 이해하는 사업가 출신들의 경제각료나 청와대 비서관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여기에서 사업가란 평생 관료생활을 하다가 잠깐 얼굴 마담용으로 대(對)정부 로비를 하기 위해 회사에서 잠시 쓴 사이비 사업가가 아니라 기업경영에 잔뼈가 굵은 진정한 경영자를 뜻한다.

국민의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위기 이후 시장경제와 국제화 경제의 세계적 추세에 걸맞은 과감한 제도개혁을 한 것은 참으로 잘 한 일이었지만 새로운 경제규범에 따르는 정책운용을 해야 할 경제팀의 구성에 옛날 군사정권 때보다 더 후퇴한, 관료 일변도의 인사정책을 펴온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작금 우리나라의 경제난국 현상도 관존민비 제도 아래에서 사업가들을 무시하고 쉴 새 없는 세무사찰과 불공정거래 조사들로 사업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죽여 놓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관리사회에서 시달림 당하고 시민단체들로부터 압박 받고 있는 우리나라 소위 대기업들도 국제수준으로 보면 아직도 보잘 것 없는 소규모다.

인구 7백만명밖에 안되는 핀란드의 노키아(NOKIA)라는 회사 하나의 주식값이 5천만 한국인들이 세워놓은 전체 상장회사들의 주식값을 합한 것보다 크다면 알아볼 만하겠다.

우리도 관존민비의 구시대적 사고방식을 하루 빨리 불식하고 세계에서 제일 사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 때 경제는 튼튼해지고 국가는 부강해지며 당당히 선진국 대열에 설 수 있을 것이다.

박윤식 <조지워싱턴대 교수.정치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