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앞둔 미디어렙 무엇이 문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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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내 방송광고 시장을 완전 경쟁체제로 끌고 갈 것이냐, 아니면 어느 정도의 제한을 둘 것이냐는 주장이 첨예하게 맞물려 정부.방송계.시민단체 등이 뜨겁게 설전을 벌이고 있다.

과연 어느 방향이 방송의 공익성과 방송 주권자인 시청자들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한 것인지를 문화관광부.규제개혁위원회.시민단체.학계의 의견과 외국의 예 등을 통해 살펴본다.

탈규제 바람이 미국.유럽을 휩쓸던 1984년, 프랑스는 관료주의 요소를 걷어낸다며 독점 공영방송의 3개 채널 중 하나(TF1)를 민영방송으로 바꿨다.

한국방송광고공사처럼 영업을 독점했던 방송광고 판매대행사(미디어렙.Media Representative)인 RFP도 세개로 쪼개 채널당 한개씩 광고영업을 맡겼다.

87년엔 이들 광고판매 대행사 세 개 중 민영방송과 연결된 미디어렙이 민영화됐고 곧바로 민영방송의 자회사가 됐다.

이 방송사와 미디어렙은 이윤추구에 정신을 쏟았고 출범한 지 1년도 안돼 전년 대비 50%의 급신장을 기록했다.

그러나 광고주들과의 거래에서 리베이트(사례금).이면거래.뇌물 등 부패와 부조리가 불거지면서 큰 사회적 문제가 됐고 프랑스 정부는 방송광고의 투명성을 위해 93년 '부패방지법(일명 샤팽법)' 을 새로 만들었다.

국내에서도 한국방송광고공사의 독점체제를 고치기 위한 노력은 지난 81년 방송광고공사 출범 이후 계속됐다.

우여곡절 끝에 방송개혁위원회는 99년 공.민영 제한경쟁체제(방송광고공사+신설 민영 미디어렙)를 대안으로 내놓았다.

이에 따라 지난해 문화관광부는 '방송광고 판매대행 등에 관한 법률안' 을 마련했고 지난 연말엔 규제개혁위원회가 이 법안에 문제가 있다며 완전경쟁 체제의 시장논리를 들이밀었다.

그러나 문화부의 당초 법안은 방송사가 출자를 통해 미디어렙을 자회사 처럼 운영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는 방송사가 직접 광고영업 효과를 누릴 수 있어 현 방송법의 '직접영업 금지' 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특히 시민단체와 학계에서는 방송사가 더 많은 광고수익을 올리기 위해 상업적.선정적인 편성과 제작을 할 경우 방송의 공익성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광고주도 광고를 매개로 방송 고유의 편성.제작권을 지금보다 더 노골적으로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규제개혁위는 미디어렙 허가제를 2년 한시적 허가로 바꾸고, 민영 미디어렙을 2개 이상(기존 포함 3개 이상) 허용토록 하는 등의 권고안을 의결해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KBS.MBC.SBS 지상파 방송3사의 미디어렙 분할지배를 허용할 뿐더러 방송의 공공성을 외면한 처사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문화부가 9일 내놓은 수정안은 규제개혁위의 권고안을 참고로 기존의 입장을 절충한 것으로 보이지만 언론.시민단체와 방송관련 학계의 반응은 냉담하다.

방송정책을 맡고 있는 주무부서가 여론의 비난을 피해가기 위해 이해 관계자들의 입장을 짜깁기한 데 불과하다는 것이다.

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연) 김주언 사무총장은 "신설 미디어렙은 1개만 허가하고 방송사 출자는 간접출자 방식으로 해야만 광고수익을 겨냥한 저질 프로그램의 양산과 종교방송.라디오 등 군소 방송사들의 고사(枯死)를 막을 수 있다" 고 강조했다.

3년 한시적 허가제(3년 후 등록제 또는 신고제)도 치열한 방송광고 경쟁을 불러올 수 있는 만큼 한시조항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서중(성공회대.신문방송학)교수는 "방송이 광고에 휘둘리는 것을 막기 위해 방송사의 직접출자에 따른 직접광고 영업효과는 문제가 많으며 굳이 한다면 방송협회를 통한 간접출자 방식이 차선책" 이라며 "광고요금조정위원회 등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광고비의 소비자 전가를 막아야 한다" 고 말했다.

김기평 기자

<미디어렙 이란…>

방송사를 대신해 광고주와 광고대행사에 방송광고(시간)를 판매하는 회사. 외국에선 영업권이 주로 미디어렙에 속한다.

국내의 경우 방송광고 영업정책에 대한 결정권이 차후 방송사와 미디어렙 중 어느 쪽에 속하느냐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게 된다.

결정권이 방송사에 주어지면 방송사가 직접 영업하는 것과 같아 현행 방송법에서 금지하는 '방송사의 직접 영업금지' 가 사실상 사문화(死文化)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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