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해외 칼럼

케리의 이라크사태 해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미국 하버드대와 프랑스 파리에서 강의하는 정치학자 스탠리 호프만 교수는 미국이 이라크에서 빠져나오는 방법론에 대한 책을 펴냈다. 유감스럽게도 그의 구상은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존 케리 상원의원의 것과는 달랐다. 호프만은 미국이 이라크 문제를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케리 후보는 저항세력 잔당을 진압하고 이라크 안정화를 이룰 때까지 미군이 주둔해야 한다고 본다.

케리는 이라크 문제에 관한 한 미국의 현 외교정책 집단이 합의한 기왕의 전략을 따르거나 공유하는 편이다. 대다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비판자도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전쟁을 통렬히 비판하면서도 이 전략에 대해선 부시와 입장을 같이한다. 네오콘과 대립하는 자유주의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부시 행정부가 9.11테러 이후 정책 오류가 많았으며 신뢰성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케리 측근들은 빌 클린턴 행정부의 외교안보팀 출신이 많다. 자신을 현실.실용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미국이 국제사회의 리더로서 필수불가결한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는 일반 가정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제적 리더로서 우월적 지위를 유지한다'는 미국의 장기정책에 배치되기 때문에 호프만의 제안을 수용하지 못한다.

호프만은 이라크 전후 처리 방법에서 케리 측의 모순을 비판한다. 그는 많은 국가가 케리의 당선을 환영하는 반면 부시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이는 이라크 사태 해결을 위해 자국군을 보내는 것엔 반대하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케리는 기본적으로 이라크 주둔 미군을 확대하자는 입장이다. 그는 이라크 보안군이 자국의 치안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믿음을 부시와 공유하고 있다. 그와 부시는 현재 이라크 사태를 민족적 저항으로 보지 않는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현 상황은 미군의 주둔에 반대하는 민족주의적 봉기가 맞다. 미군의 철수만이 상황을 끝낼 수 있다.

미국 주도의 연합군이 떠난다 해도 황폐화된 이라크는 남고 혼란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라크 사람들의 책임감에 호소해야 하는 상황이 돼 버렸다. 호프만 논쟁의 핵심은 미국이 이라크에서 손을 떼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일정 부분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계획은 이라크 통치에 관계된 모든 미국 관리의 지속적인 감축을 필요로 한다. 이는 이라크 내 영구적인 미국 기지의 포기를 의미한다. 부시와의 첫 토론회에서 케리는 부시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14개 기지 건설을 즉각 중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케리는 또 이라크의 국부인 원유를 이라크인이 관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두 발언은 성공적인 철수를 위해 필수적이다. 내년 1월의 총선 관리는 유엔에 넘겨야 한다. 유엔은 이라크 저항세력이 총선에 참여하도록 협상해야 한다. 부시 행정부와 군부에서 저항세력에 대한 양보를 놓고 강렬한 저항이 예상될 수 있다. 하지만 호프만의 말대로 미국은 동맹국이 아닌 저항세력과 합의해 평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

케리가 이 제안을 수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어쩌면 너무 늦었는지도 모른다. 미국의 현 정책결정자들은 '무력한 거인'이라는 미국의 망령을 또다시 불러들이고 있다. 호프만의 제안을 채택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미국이 세계의 평화를 지키고 테러집단.불량국가와의 전쟁을 책임지며 한편으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국가라는 의식이다. 케리가 당선된다면 부시 행정부가 취했던 이라크 정책을 계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부시가 뿌린 씨는 스스로 거두게 해야 한다. 문제는 이라크 사태가 이번 선거의 핵심 이슈가 아니란 점이다. 미국이 다음 4년 동안 제대로 된 민주국가가 되도록 하는 일, 이것이 현재의 이슈다.

윌리엄 파프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칼럼니스트
정용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