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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 자금 조사, 수사 장기화 예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안기부의 선거자금 불법지원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궤도수정 단계에 들어섰다.

수사에 대한 한나라당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 데다 자금을 실질적으로 관리한 것으로 드러난 한나라당 강삼재(姜三載)부총재가 자진출석 거부의사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를 진행하겠다" 며 姜부총재가 앞으로 출두하지 않을 경우 체포영장을 발부받는 등 각종 법률적 절차를 동원해 소환조사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오는 10일부터 임시국회가 다시 열리면 姜부총재 체포영장 발부에 필요한 국회 동의를 받아내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을 것" 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설 연휴 이전까지 관련자들을 차례로 조사해 이번 수사를 마무리 짓겠다는 검찰의 당초 계획이 이처럼 차질을 빚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장기 미제사건' 으로 남아있는 국세청을 동원한 대선자금 불법조성 사건처럼 장기화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검찰의 향후 수사 및 사법처리 대상자도 대폭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당초 검찰은 姜부총재 조사를 통해 윗선과의 연결고리가 확보되면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까지 수사가 이어질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이 또한 사실상 어렵게 된 것이다.

최소한 김기섭(金己燮)전 안기부 차장.권영해(權寧海)전 안기부장.姜부총재 등에 대한 사법처리를 통해 이번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겠다는 계획도 다소 흐트러진 것이다.

신한국당의 안기부 국고 1천1백57억원 전용사실이 드러나면서 한나라당이 입은 정치적 피해가 만만치 않다는 판단도 함께 작용한 듯하다.

이에 검찰은 7일 구속 수감된 金 전 안기부 차장과 황명수(黃明秀)전 의원을 다시 불러 姜부총재의 혐의 내용을 추궁하는 한편 청와대나 당시 권영해 안기부장 등 윗선의 예산전용 지시 또는 묵인 여부를 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분간 姜부총재에 대한 조사가 어려울 것으로 보이자 權 전 부장이나 이원종(李源宗)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연결고리로 압박을 계속하겠다는 구상이다.

검찰 관계자도 "姜부총재가 출두하지 않는다고 수사를 멈출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면서 "다른 방법을 강구 중" 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이 姜부총재에 대한 체포영장 청구 방침을 밝히고 있는 것도 한나라당을 압박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야당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검찰수사도 파행을 겪을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박재현.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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