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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 문서 공개 파문… 중국 권력투쟁 조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1989년 6.4 천안문(天安門)사태와 관련된 고위 지도층의 대화록 등 기밀문서가 최근 미국에서 공개된 사건을 놓고 중국 고위층 내부의 권력투쟁설이 다시 불거져 나오고 있다.

◇ 유출 배경〓극비 문건에는 덩샤오핑(鄧小平) 등 천안문사태 당시 최고 권력자들의 군병력 투입 결정과정, 원로들에게 강경진압을 건의한 리펑(李鵬)의 역할, 계엄령을 적극 수행한 공로로 장쩌민(江澤民)이 총서기로 발탁된 배경 등 극히 민감한 사안들이 자세히 담겨 있다.

문건유출 사실을 처음 보도한 미 언론은 이 문건을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인 중국 정부의 한 관리로부터 입수했다고 밝혔다.

유출자로 알려진 장 리앙(가명)은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중국의 개혁파를 동정하는 공산당원이며 문건 공개를 통해 중국 내에서 천안문사태가 공론화되길 바란다" 고 말했다.

미국 내 중국 전문가들은 민감한 내용과 폭발성에 비춰볼 때 江주석과 리펑 전인대 상무위원장 등 현 집권세력에 맞서 주룽지(朱鎔基)총리를 중심으로 한 개혁파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내부에서 유출된 것으로 보고 있다.

朱총리 개혁에 못마땅해하는 李위원장은 물론 그동안 천안문 사건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비춰졌던 江주석도 연루사실이 드러나 수세에 몰리게 됐다는 것이다.

◇ 끝없는 물밑 갈등〓사실 문건이 공개되기 전에도 중국 내에선 2002년 공산당 16차 당대회 때 결정될 후계구도 문제를 놓고 江주석.李위원장.朱총리 등 3인이 갈등을 벌이고 있다는 분석이 끝없이 제기돼왔다.

특히 지난해 10월 중국 당 15기 5중전회(中全會)때엔 江주석의 후계자로 알려진 쩡칭훙(曾慶紅)당 조직부장이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정위원으로 승진하는 데 실패하면서 갈등 조짐은 크게 부각됐다.

당시 홍콩언론들은 曾을 견제하는 후진타오(胡錦濤)부주석은 물론 朱총리.리루이환(李瑞環)정협 주석측이 江주석의 의도를 순순히 들어주지 않은 것으로 보도했다.

3자의 갈등과 견제 국면은 때론 흠집내기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朱총리는 99년 초 세계무역기구(WTO)협상 과정에서 미국에 지나치게 많은 양보를 했다는 이유로 보수파의 맹공을 받았다.

江주석은 99년 가을 샤먼(廈門)시 밀수사건에 측근인 자칭린(賈慶林) 베이징(北京)시 당서기의 부인의 연루설이 나돌았고 당시 朱총리는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江주석측을 압박했다.

李위원장도 지난해 총리 시절 의욕적으로 추진한 싼샤(三峽)댐 관련 스캔들에다 측근인 청커제(成克杰)전인대 부위원장의 부패사건으로 궁지에 몰렸다.

◇ 미국의 음모?〓일각에서는 이번 문건공개가 중국을 전략적 동반자에서 전략적 경쟁자로 인식하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당선자의 미 공화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중국을 흔들려는 시도로 파악하는 시각도 없지 않다.

미 정보기관이 중국의 권력갈등을 부추기기 위해 공작 차원에서 기밀을 빼내 언론에 공개했다는 것이다.

베이징.홍콩〓유상철.진세근 특파원,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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