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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금융의 미래를 보다 … 하나희망기금 성공담 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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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서울 송파구에서 H중국집을 운영하는 이연정(가명·31·여)씨, 논현동 세탁소 사장인 황선진(47)씨, 동작구 본동 전파사의 홍상연(40)씨. 신용도 담보도 없던 이들이 어엿한 사장님이 되는 데 필요한 돈은 2000만원가량이었다. 하지만 돈과 의욕만으로 성공이 보장되는 건 아니었다. 그들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플러스 알파’가 필요했다. 자문위원의 컨설팅과 가족의 지원, 또는 본인의 기술이 그것이다.  글=한애란 기자 사진=안성식·김성룡 기자 조언  중국집 확 바꿔 재기한 이연정씨 “가게를 옮겨도 대출을 해주신다고요?” 지난해 10월 중순 하나희망기금 안우선 자문위원과 상담하던 이연정씨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씨가 남편과 운영하던 배달 전문 중국집은 매출이 갈수록 떨어져 임대료 내기조차 빠듯한 형편이었다. 돌파구를 찾다가 ‘주방시설을 개조해 홀을 새로 꾸며야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하지만 큰돈을 구할 길이 없었다. 이씨 부부는 둘 다 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다. 혹시 불이익이 있을까 2년 가까이 혼인신고도 못했다. 서민에게 사업자금을 저리로 빌려준다는 희망기금이 유일하게 의지할 곳이었다. 상담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가게를 찾은 안 위원 눈에도 상황은 열악했다. 내부가 어둡고 허름한 데다, 조리시설은 위생이 엉망이었다. 시설을 바꾼다 해도 손님들이 들 것 같지 않았다. 한 시간 상담 끝에 안 위원이 제안했다. “옮깁시다. 가게를 안 옮기면 대출을 안 해주겠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제안이었다. 새 출발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잡히는 듯했다. 부부는 서울은 물론 지방까지 가게자리를 찾아 발품을 팔았다. 그러다 나온 곳이 송파구의 한 순댓국집 자리였다. “주변 골목에 음식점은 많은데, 유독 중국집이 한 곳도 없었죠. 중국집이 하나 들어가면 딱이겠다 싶었어요.” 새 가게에 모든 걸 걸었다. 저축한 돈 300만원과 이전 가게 보증금 500만원, 희망재단의 대출금 2000만원이 가게 보증금과 인테리어에 들어갔다. 예전 가게에서 살림을 꾸려왔던 터라, 살 곳이 없어 친구 방에 얹혀 살기로 했다.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지난해 12월 문을 열자 별 홍보도 안 했는데 손님이 밀려들었다. 기대 이상이었다. 가게가 알려지면서 전화 주문이 이어졌다. 테이블 7개짜리 작은 가게가 어느새 평일 20만원, 휴일엔 50만원가량의 매출을 올린다. 예전 가게 매출이 한 달 150만원 정도였던 걸 생각하면 대성공이다. 최근엔 종업원을 새로 고용해 주변에 전단지를 돌리며 홍보도 시작했다. 이씨는 “자리 잡힐 때까지는 하루도 안 쉬겠다”고 한다. 열심히 돈 모아 빚 갚고 혼인신고도 할 생각이다. 안우선 위원은 “자문위원들이 은행 지점장 출신이다보니 대출 신청자들이 못 보는 부분을 발견해 아이디어를 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자문위원들의 컨설팅은 창업한 이후에도 계속된다. 한 달에 한 번씩 자문위원들은 대출자를 찾아간다. 매출 동향을 체크하고, 조언을 해주기 위해서다.


기술  전파사 차려 꿈 되찾은 홍상연씨

지난해 말, 홍상연(사진)씨는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운영하는 ‘은혜전기’로 계속 일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많을 땐 매출이 월 700만원까지 되기도 했다. 그는 “내 통장에 잔고가 남아 있다니, 예전에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며 웃었다. 전파사를 차릴 생각을 하기 전까지 홍씨는 많이 방황했다. 2001년 친구에게 사기당해 모아둔 돈을 모두 날린 뒤, 한때 영등포에서 노숙자로 지냈다. 이후엔 대리운전기사를 거쳐 공사 현장에서 막노동을 했다. 그리고 뒤늦게 ‘나에게 기술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고등학교와 군대생활 9년 동안 전기기술을 배웠어요. 공사판에 가니까 기술이 있다고 일당을 점점 올려줘서 10만원씩 주더라고요.” 동네 이웃들도 전기제품 고칠 게 있으면 그를 찾았다. 자격증을 살려서 아파트 전기실에 취직했던 그는 아예 전파사를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가게 자리도 미리 봐뒀다. 하지만 돈을 구할 길이 없었다. 창업 자금을 구하지 못해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 생각했던 때를 떠올리면 그는 지금도 눈물이 어른거린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하나희망기금에서 1700만원 대출 승인이 떨어졌을 때 그는 ‘로또 맞았을 때 이런 기분이겠구나’ 생각했다. 그 돈으로 지난해 6월 전파사를 차린 홍씨는 중고 승합차를 타고 전국 곳곳을 다니며 일한다. 기술을 인정 받은 덕분에 동네 만두가게 인테리어부터 건설현장 가건물 가설 일까지 하고 있다. “전기일은 재료비가 많이 들지 않아 기술 있고 부지런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막노동을 했던 경험도 지금은 자산이다. 덕분에 큰 규모의 일을 할 때 많은 인력을 쉽게 섭외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최근에 꿈을 더 키웠다. 은혜전기를 더 키워 ‘은혜인테리어’를 차릴 생각을 하고 준비 중이다. 희망기금에서 대출받은 돈도 계획보다 빨리 갚으려고 한다. 5년 동안 갚으면 되지만 그는 올해 안에 3분의 2 이상 갚는 게 목표다. 홍씨는 창업을 위해 희망기금이나 미소금융을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할 말이 많다고 했다. “어렵게 대출 받은 돈으로 음식점 차렸다가 망하는 사람을 보면 안타까워요. 직업훈련을 받거나 건설현장에 나가서 기술을 익히면 목공소나 제재소도 할 수 있잖아요. 아니면 나한테라도 와서 전기기술 배우든가. 그럼 그렇게 쉽게 망하진 않을 거예요.”


가족 세탁소에 올인한 황선진씨

황선진씨가 서울 논현동 자신의 세탁소에서 다림질을 하고 있다. 황씨는 하나희망기금에서 대출 받은 2000만원으로 창업했다. [안성식·김성룡 기자]

약 36㎡짜리 세탁소는 세탁물로 가득 차 앉을 곳이 마땅찮았다. 서울 논현동 주택가 골목에 자리 잡은 ‘선진명품 세탁소’는 그 동네에선 옷이 가장 많이 걸려 있는 세탁소다. 2008년 황선진씨가 남의 이름으로 된 이 가게를 처음 운영할 때만 해도 문 닫기 직전이었다. 영업 첫날 수입은 6000원. 과연 이걸로 먹고살 수 있을지 암담했다. 황씨 부부는 개인파산자다. 잠실에서 했던 세탁소는 아파트 재건축으로 주민들이 떠나면서 문을 닫았다. 재기를 위해 삼겹살 집을 열었다가 카드 빚만 떠안고 주저앉았다. 사채업자들에게 시달리다 2006년 결국 파산신청을 택했다. 어렵게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황씨는 가게에서 먹고 자며 일했다. 하지만 열심히 해도 손에 쥐는 건 얼마 안 됐다. 가게 월세가 120만원인 데다, 가게 주인에게 임대보증금 이자로 40만원씩 줘야 했다.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아내 월급까지 월세와 이자 내는 데 들어갔다. 게다가 가게 주인이 찾아올 때마다 ‘가게를 뺏기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에 시달렸다. ‘임대보증금만 있으면 일어설 수 있겠는데.’ 은행에서 번번이 퇴짜를 맞다가 찾은 게 희망기금이었다. ‘우리 같은 사람도 될까’ 생각하며 신청했는데 2000만원을 대출 받았다고 했다. 그걸로 원주인에게 임대보증금을 내줬다. “내 이름으로 계약서를 쓰고 사업자등록증을 만들었죠. 진짜 ‘내 가게’가 된 겁니다.” 가게를 살리기 위해 황씨는 ‘올인’했다. 부인도 유치원을 그만두고 세탁소로 출근했다. 강남 유흥업소 종업원을 손님으로 잡기 위해 황씨는 밤이고 새벽이고 가리지 않고 배달을 다녔다. 강남 일대는 물론 금호동으로 이사 간 고객이 불러도 오토바이를 몰고 배달을 갔다. 아침부터 한밤중까지 가게를 지키는 건 아내의 몫이었다. 잠실의 월세방에서 지내는 초등학생 딸과 중학생 아들을 돌볼 시간도 없었다. “애 엄마가 워낙 독하게 하니까 버텼죠. 일이 아주 많을 때가 아니면 둘이서만 꾸려왔어요.” 부부가 휴일도 없이 매달린 끝에 이젠 월 100만원씩은 꼬박꼬박 저축한다. 지난해 8월엔 가게 근처에 월셋집을 구해 온 가족이 다시 함께 살게 됐다. 아이들 걱정이 컸는데 한시름 놓았다. 그는 “같이 대출 받은 사람들을 보면 돈만 있다고 되는 건 아니더라”고 말한다. “부부가 미친 듯이 일했기 때문에 이 정도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미소금융 사업=금융 소외 계층에 창업과 운영자금을 무담보·무보증으로 지원하는 소액대출 사업. 신용등급이 7~10등급이면서 사업자금이 필요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신용불량자나 면책 결정 뒤 5년이 지나지 않은 개인파산자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소득이 적어도 신용등급이 괜찮은(6등급 이내) 사람은 이용할 수 없다. 미소금융의 운영은 기업과 은행의 기부금으로 이뤄진다. 현재 전국에 27개 미소금융재단 지점이 운영 중이다. 금융위원회는 올 상반기 내로 지점을 50개로 늘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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