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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정부 국정원 대량해직 불법적 사표 강요 은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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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1998년 4월 1일 당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는 직원들에 대한 인사를 했다. 581명의 직원에게 ‘총무국 소속으로 재택근무를 명령한다’고 통보했다. 총무국 근무는 보직이 없음을 의미한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지 33일 만의 일이다. 당시 안기부는 “외환위기 상황에서 고통분담에 동참해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구조조정 대상자의 대부분은 당시 1차장(국내정보)과 3차장(대공수사) 소속 요원들이었다. 안기부는 99년 1월 ‘국민에게 신뢰받는 정보기관으로 다시 태어나겠다’며 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581명 중 35명은 99년 3월 31일까지 버텼지만 결국 모두 해직됐다. 이들은 국정원 측으로부터 집요하게 명예퇴직이나 의원면직을 강요받았다고 주장했다.

일부 해직 간부들은 ‘국가사랑모임’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법정투쟁에 들어갔다. 또 국정원에 불법행위를 밝혀달라는 청원을 냈다. 법원은 2003년 9월 국정원 해직자 21명이 낸 행정소송에서 “불법 면직이기 때문에 무효”라고 판결했다. 당시 국정원은 이들 중 9명의 복직을 허용했고, 나머지 12명은 정년이 넘었다며 복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이번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국정원의 고발에 따라 검찰이 수사에 나서면서 당시 불법 행위의 일부가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는 해직된 국정원 직원들이 낸 행정소송에서 거짓 증언을 한 혐의(위증)로 국정원 간부 박모(57)씨를 불구속 기소했다고 18일 밝혔다. 또 직원 면직이 내부 인사기준에 따라 이뤄진 것처럼 허위로 문서를 꾸민 뒤 이를 법정에 제출한 혐의(허위 공문서 작성 및 행사)로 전 국정원 사무관 김모(48)씨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당시 인사과에 근무했던 박씨는 2005년 8월 해직자들이 낸 ‘면직 처분 무효 확인’ 소송에 증인으로 나와 “무보직 발령자를 선정할 때 1년 후에는 직권면직할 방침이 서 있었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박씨는 실제로 이들을 불법적으로 해직할 방침이 마련됐고, 이에 따라 대상자들에게 사표 제출을 강요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박씨와 함께 근무했던 김씨는 이 소송에서 ‘대상자 선정 기준 없이 대량면직이 이뤄졌다’는 해직자들의 주장을 반박하려고 인사분류 기준 등이 담긴 ‘간부 인사 추진 계획’이란 제목의 서류를 허위로 만든 뒤 증거자료로 법정에 제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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