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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재현의 시시각각

반쪽짜리 ‘박정희기념관’ 공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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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좌승희 원장은 ‘박정희와 한국의 경제발전’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박 대통령 시대는 흥하는 자를 우대함으로써 흥하는 자가 넘치고, 모두가 따라 배워 흥하는 자가 되는 과정이었다”고 강조했다. 서울대에서도 우등생만 들어갈 수 있는 기숙사(정영사)를 만든 이도 ‘흥하는 자를 우대해야 다같이 흥한다’는 믿음을 가진 박정희 대통령이었다고 회고하면서 자신도 그 기숙사에서 정운찬(현 국무총리)과 한방을 썼고, 옆방에 한덕수(전 총리)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박정희 사후에 갈수록 ‘경제의 정치화’가 진행된 탓에 나라가 활력을 잃고 있다고 걱정했다.

조갑제 대표는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박정희에 관한 ‘팩트(fact)’를 가장 많이 발굴한 박정희 전문가다. 그는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가 서울 상암동 외진 곳에 건립을 추진 중인 ‘박정희 기념·도서관’에 대해 “절대로 지어선 안 된다”고 단언했다. 공청회 전날 상암동 부지를 가보았다고 했다. “한 시간 동안 머물렀는데, 행인이 10명도 채 안 지나가더군요. 사방이 꽉 막혀 있어요. 대중교통으론 접근도 어렵고… 게다가 왜 하필 쓰레기 산(난지도 공원) 옆입니까. 박 대통령이 서울시 청소국장이나 환경부 장관이라도 지냈나요? 전국에서, 나아가 세계에서 찾아올 기념관인데 말이 됩니까.”

한양대 김흥순 교수도 계획 중인 기념관의 상징성과 접근성, 시설 규모를 비판했다. 역에서 도보로 20분 이상 걸리는 거리, 주차 대수 15대에 1000여㎡(360평)에 불과한 ‘전시실’에서 누구를 어떻게 기념하고 연구하고 세미나를 열겠느냐는 것이다. 미국은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이 12개의 대통령 기념도서관을 운영 중이고, 총 공사비가 5억 달러(약 6000억원) 가까울 것으로 예상되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기념관도 만드는 중이라고 김 교수는 말했다.

물론 이날 발표자들과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상암동 기념관을 추진 중인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측 인사들이 공청회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쪽짜리 공청회였던 셈이다. 주최 측이 참석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기념사업회는 최근 신문에 광고를 내고 일반인 대상의 모금을 새로 시작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도 도움을 부탁했고, 전경련은 지난해 12월 14일 회원사와 몇몇 은행에 공문을 보내 “모금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곧 공사가 재개될 ‘박정희 기념·도서관’은 짓자마자 서울시에 기부 채납되고 20년 후엔 운영권마저 서울시가 갖게 된다. 무엇보다 ‘서울시립 독서실’ 한편에 ‘박정희 전시실’이 더부살이를 하는 기형적인 모양새가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상암동 구석에 짓는 계획에 반대한다. 차라리 짓지 않는 게 낫다.

박정희기념관은 1997년 12월 대선 직전에 경북 구미의 박정희 생가를 방문한 김대중 후보가 건립을 약속한 이래 13년째 갈지(之)자를 그려왔다. 지난 정부가 소송까지 내가며 사실상 건립을 훼방놓은 데다 계획 자체가 부실했던 탓이 크다. 박정희의 장녀 박근혜씨가 ‘살아 있는 권력’이라는 점도 기념관 건립엔 오히려 악재(惡材)다. 박근혜 전 대표는 이 문제에 아무런 입장도 표명하지 않고 있다. 논란이 확산될 경우 득실이 가늠되지 않으니 차라리 침묵이 낫다고 판단한 것일까. 그렇더라도 박정희라는 국가적 브랜드, 소설로 치면 대하소설 감인 그를 기리는 시설이 지금처럼 졸속으로 추진돼선 안 된다. 쫓기듯 다급하게 만들 까닭이 없다. 이제 시민들이 나서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