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안기부 돈 비자금 수사 어디까지 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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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안기부의 1996년 15대 총선 자금 불법 지원 사건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5일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이 안기부 예산 전용을 주도한 것으로 보이나 윗선으로부터의 지시가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 수사를 계속 하고 있다" 고 밝혔다.

지금까지 검찰 수사 결과 안기부 자금은 金전차장이 인출해 신한국당 계좌로 보내줬으며 당시 강삼재 사무총장이 이를 찾아 총선에 출마한 여당 후보들에게 분배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金전차장은 검찰에서 "안기부 예산 집행은 운영차장(1995년 조직개편 전에는 기조실장)의 전결사항이었다" 며 권영해(權寧海)당시 안기부장의 관련 혐의는 부인하고 있다고 검찰은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金전차장이 당시 안기부 예산과 인사를 총괄하는 위치에 있었지만 국가예산 1천1백57억원을 혼자의 판단으로 인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즉 청와대에서 자금 인출을 지시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당시 權안기부장이 매달 재무관으로부터 예산 지출 내역 등을 보고받았던 것으로 미뤄 權씨가 총선자금 지원과정에서 모종의 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고 밝혔다.

검찰은 이에 따라 95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패배한 신한국당이 총선을 앞두고 청와대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고, 청와대가 이를 수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청와대가 權부장에게 자금 마련을 지시했고 權부장은 다시 金차장에게 지시해 예산 전용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또 이 과정에서 당시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차남 현철(賢哲)씨가 각종 여론조사 비용 명목으로 거액을 빼냈고, 이 돈은 다시 총선에 출마한 그의 측근에게 뿌려진 사실도 함께 밝혀낸 것으로 알려졌다.

96년 1월 안기부 예산 26억원이 여론조사 비용으로 책정됐으나 상당액은 엉뚱한 곳에 사용된 흔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문제는 1년 전인 95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도 안기부 자금 2백17억원이 여당에 지원된 점에 비추어 일회성이 아니라는 데 있다.

한편 경부고속철 차량 선정과 관련, 프랑스 알스톰사 로비스트 최만석(60.수배중)씨로부터 5억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난 황명수 당시 신한국당 선대위 부의장도 선거자금 불법 지원과 관련해서는 사법처리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 조사결과 黃씨도 안기부 자금이 신한국당으로 건네진 것을 알지 못했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은 黃씨를 고속철도 로비자금을 받은 혐의(알선수재)로만 이날 사법처리했다.

총선 지원금 전달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한 것으로 밝혀진 權전부장과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도 조만간 검찰 조사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15대 총선 때 신한국당 선대위 의장이었던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조사 여부도 관심이다.

그러나 검찰 내부에서는 "당시 李총재는 입당한 지 3개월 정도밖에 안된 실정이어서 신한국당의 자금 집행 내역을 알았을 가능성이 없다" 며 소환 조사가 불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박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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