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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금메달 딸 때 홈쇼핑 매출 뛴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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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설날인 14일 오전 11시30분. 밴쿠버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 경기가 열렸다. 이정수 선수가 금메달을 딴 이 경기 중계방송엔 시청자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같은 시간 현대홈쇼핑 채널에선 화장품(마스크팩) 소개 방송이 흘러나왔다. 명절 준비로 고생하는 주부 고객을 겨냥한 방송이었다. 한 시간 뒤 방송을 마쳤을 때 3100개 세트가 팔려 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평소보다 24% 많은 수준이었다.

홈쇼핑 채널과 지상파 채널은 시청자를 놓고 ‘제로섬(한쪽이 득을 보면 다른 쪽이 반드시 손해를 보는)’ 게임을 벌이는 치열한 경쟁자다. 지상파의 시청률이 올라가는 시간엔 대개 홈쇼핑 시청률은 떨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어떻게 이날 현대홈쇼핑의 화장품 판매가 성황을 이뤘을까. 비밀은 시청자가 방송 중간중간 리모컨으로 채널을 휙휙 바꾸는 시간에 있었다. 방송 전문용어로는 ‘재핑타임(zapping time)’이라고 한다.

스케이트 등 겨울 스포츠 경기 중계는 경기 준비 시간이 많고, 관심이 낮은 외국 선수 경기도 포함된다. 이때 시청자들은 채널을 돌린다. 현대홈쇼핑은 시청자의 이런 습관을 활용했다. 한국 대표팀 경기 전후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상품을 소개한 것. 이 회사 임현태 마케팅팀장은 “한국 대표팀 출전 경기가 끝난 직후 방송된 상품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17일 오전 이상화 선수가 여자 500m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직후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방송된 학습지 상품은 70분 만에 2600세트가 팔렸다. 평소보다 18% 증가한 수치다. 경기 직후 채널을 돌리는 시청자가 많을 것으로 예상해 방송 구성을 바꾼 것도 한몫했다. 쇼호스트의 상품 소개를 평소보다 60~70% 줄인 대신 학습지 특성상 고객이 가장 궁금해하는 상품·배송 정보를 간략하게 안내하는 자막을 띄운 것이 유효했던 것이다.

홈쇼핑의 매출 확대는 이처럼 시청자의 심리와 습관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다. 이 때문에 지상파 방송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방송하는지는 핵심 고려사항이다. 인기 프로그램 전후에는 홈쇼핑 매출도 덩달아 오른다. CJ오쇼핑 백민정 마케팅팀장은 “재핑타임 10분 동안엔 상품의 핵심 설명만 요약한 내용을 방송한다”고 말했다.

‘시간’도 주요 변수다. 분당 평균 매출만 1000만원이다. 그러나 방송시간이 길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홈쇼핑 채널에 들어왔다 머무르는 잔류시간 평균은 3분, 이 중 첫 주문까지 걸리는 시간은 7분이다. 최근 홈쇼핑채널의 상품당 소개 시간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는 것도 이런 ‘시간과의 싸움’ 때문이다. 2분~2분30초 정도로 길었던 오프닝 멘트는 30초 정도까지 줄어들었다. 백 팀장은 “홈쇼핑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시청자는 거의 없다”며 “3분 내외의 짧은 시간 동안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방송 중에도 수시로 계획이 바뀐다. 쇼호스트는 실시간으로 주문 반응 그래프를 확인하고, 이에 따라 방송 편성 시간을 고무줄처럼 늘였다 줄였다 한다. 상품 매출이 늘어나면 연장 편성하고, 다음 상품 소개 분량을 줄이는 식이다. 생방송 중에도 PD와 쇼호스트가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방송 분량을 조절한다.

상품 종류에 따라 편성 전략도 달라진다. 가전·디지털 제품의 경우 고가인 경우가 많다. 소비자가 가격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정보 제공이 필수다. GS샵 황성철 쇼핑호스트팀장은 “가전 제품은 충분히 고민하고 사는 경우가 많아 자세한 설명이 중요하다”며 “기술적인 부분까지 쉽게 설명하기 위해 ‘크로마’(배경 자막)를 충분히 활용한다”고 말했다. 식품의 경우는 다르다. 감성적인 부분에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현대홈쇼핑 김상우 PD는 “설명을 최대한 줄이고 음식 요리 장면을 보여주는 등 식감을 자극한다”며 “굴비 요리의 경우 맛있게 보이기 위해 배를 가르는 것만 수백 번씩 연습하고 촬영에 나선다”고 말했다. 이·미용 상품의 경우에는 시연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 사용 전후에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매출과 직결된다.

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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