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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밖 인문학 강좌 열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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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인문학의 위기로 상징되는 '대학의 실패' 는 대학밖 대안교육을 부채질 하고 있다. 특히 올해 그런 움직임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이 모임들은 학생들이 방학을 맞으면 더욱 활기를 띤다. 대학의 강의실은 썰렁한데 이곳의 열기는 뜨겁다.

틀에 박힌 제도권 교육에 대한 반작용 때문이다. 그런 몇몇 그룹들의 연말 공부 풍경을 엿본다.

▶철학아카데미=26일 밤 서울 인사동 동일빌딩 7층의 철학아카데미(http://www.acaphilo.co.kr)는 문밖 영하권 날씨와는 상관없이 수강생들의 향학열로 후끈했다.

밤 8시부터 두시간 동안 하는 '프랑스 철학 입문' 시간. 20여 명의 학생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강사(유종렬)의 열강을 듣고 있다. 아카데미의 규모라야 사무실 한칸에 20여평 남짓한 강의실 두개가 고작이다.

이곳은 올 4월 문을 열었다. 널널한(?) 강단을 박차고 나와 '지상의 철학' 을 역설하는 이정우(원장)씨가 뜻 맞는 동료학자와 힘을 모은 결과다. 지난 18일 개강한 겨울 수강생은 19개 강좌에 2백50여 명에 이른다.

'기술과 운명 : 사이버펑크에서 형이상학으로' '기철학과 서양철학' 등 강좌명만 봐도 구태를 벗어났다.

수강생의 반 이상은 대학.대학원생. 한 철학과 대학생은 "고전 중심의 '강단철학' 은 아무래도 벽이 있는데 이곳은 그런 것이 없어 재미있다" 고 말했다.

▶문예아카데미=철학아카데미 근처에 있는 문예아카데미(http://www.kpaf.org)는 예술.철학.문예비평 등을 아우르는 종합 강좌로 진작 자리를 굳혔다. 문을 연 지 8년, 배출 학생만도 1만5천여 명을 넘었다.

이곳 수강생들의 열기도 만만찮다. 20~50대 남녀노소 구분이 없다. 일반강좌로 13개 과목이 개설돼 있는데 홍성태(문화과학 편집위원).김민수(디자인 문화비평 편집실장) 등 문화담론계의 스타들이 강사로 나선다. '누가 공자를 죽이나?' 식의 도발적 제목부터 칸트의 미학강의까지 다양하게 꾸며져 있다.

수강생인 모 공연기획사 직원은 "음식으로 치면 부페식단 같은 곳" 이라고 표현했다. 나름대로 제도적 틀에 구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선택과 공부가 이뤄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밖의 공간=두 곳 말고도 이와 유사한 대안학교나 공부모임은 도처에 있다. 각종 시민단체에서 하는 시민강좌도 그런 형태의 하나다. 보다 학술적 순도를 높여 고른다면, 세미나 중심 연구모임인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 ' (http://www.transs.pe.kr)를 눈여겨 볼 만하다.

이곳에서는 국문학.사회학.철학을 비롯해 종교학.중문학.역사학 등 다양한 영역이 교차한다. 현재 진행중인 세미나만 '동아시아 근대성 세미나' '시간의 철학 세미나' 등 20여개. 연령과 전공.학위 불문한 사람들이 모여 '지적충돌' 을 경험하는 곳이다.

이곳 회원이자 요즘 여성 논객으로 주목받고 있는 고미숙씨는 "분자적 욕망이 교차하는 변이와 생성의 공간" 으로 정의했다. 이런 충돌 속에 학계의 한해도 저물어 간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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