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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작에 값 폭등 … 설탕 무역전쟁 조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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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설탕, 있으면 좋고 없어도 큰 불편이 없을 듯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설탕이 세계 경제를 흔들고 있다. 흉작으로 설탕값이 급등하자, 아시아 신흥시장 물가가 오르고 무역 전쟁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나비효과이자 애그플레이션이다.

16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주 국제 상품 시장에서 원당 가격은 파운드(453g)당 26~27센트에 거래됐다. 1년 전만 해도 14~15센트에 사고팔았다. 2008년엔 10센트를 밑돌았다. 그나마 1월 말 파운드당 29.90센트에 비하면 가격이 조금 내렸다. 설탕값이 파운드당 30센트에 육박한 것은 29년 만의 일이다.

설탕값이 오른 건 공급이 줄어서다. 인도의 가뭄으로 지난해 사탕수수 농사가 흉작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도 정부가 쌀·밀과 달리 사탕수수 농가에는 보조금을 주지 않으면서 재배 농가 수도 줄었다. 이로 인한 세계적인 생산 감소폭은 13%에 이른다. 인도는 세계 최대의 설탕 소비국이기도 하다.

세계 최대 설탕 생산국인 브라질은 지난해 가을 비가 너무 많이 오는 바람에 농사를 망쳤다. 기댈 곳이 사라진 셈이다. 친환경 에너지로 사탕수수가 활용되면서 식료품용 설탕 공급이 줄어든 것도 ‘설탕 대란’을 부추겼다.

블룸버그는 영국의 트로픽스캐피털매니지먼트의 전망을 인용해 1분기에만 세계 설탕 부족분이 500만~600만t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의 연간 소비량이 90만t인 점을 감안하면 여기저기서 아우성이 날 만한 양이다. 동남아에선 돈이 있어도 설탕을 못 살 지경이다.

문제는 설탕 문제가 설탕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장 도미노로 가격 인상이 나타나고 있다. 설탕이 안 들어가는 가공식품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제당업체들은 이미 가격을 올리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지난해 9월 8.9% 가격을 올린 후 5개월 만의 추가 인상이다. 설탕과 설탕값의 영향을 받는 라면·과자·빵 등은 정부가 특별 관리하는 52개 생필품인 ‘MB 물가’에 속한다.

필리핀·인도·태국에선 설탕뿐 아니라 쌀값까지 올라 이중고를 겪고 있다. HSBC에 따르면 아시아 신흥국가에서 식료품이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34.5%다. 미국은 15%다. 아시아는 식료품 가격 변동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얘기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설탕 등 식료품 가격 상승이 아시아의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설탕으로 인한 무역 전쟁도 표면화됐다. 지금이 기회다 싶어 수출량을 늘린 유럽연합(EU)의 움직임이 화근이다. EU집행위원회는 지난달 말 설탕 수출을 50만t 늘리겠다고 밝혔다. 설탕 농가에 보조금을 주는 대신 세계무역기구(WTO)가 정한 수출 쿼터(연간 135만t)를 지키기로 하고선 갑자기 쿼터를 늘린 것이다. 브라질·호주·태국은 당장 “WTO 합의 위반”이라며 WTO 제소를 들먹이고 나섰다.

박진용 삼성증권 연구원은 “2007~2008년 시즌엔 600만t을 수출하고 수입은 전혀 하지 않았던 인도가 2009~2010년 시즌엔 수출 없이 수입에 나서고 있어 당분간 설탕 가격 강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블룸버그는 설탕 품귀 현상이 3분기에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김영훈 기자

◆애그플레이션=농업(agriculture)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신조어.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면서 일반적인 물가가 덩달아 오르는 현상이다. 밀가루와 우유 가격이 오르면서 빵값이 상승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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