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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발 안 듣는 약값 정책 10년 … 이번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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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의약품 실거래가 상환(償還)제는 이상적인 제도였다. 그러나 10여 년간 작동하지 않았다.”

16일 보건복지가족부 박하정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의약품 저가구매 인센티브제’ 도입(본지 2월 12일자 19면) 브리핑에서 그동안의 정책 실패를 인정했다. 시장 기능을 무시하면 탈이 나게 마련이고, 이상만으로는 안 된다는 점을 10년이 지나서야 시인한 것이다.

의약품 실거래가격 상환제(실거래가제)는 1999년 11월 시행됐다. 그 전에는 정부가 개별 약품의 가격을 정하는 고시제였다. 정부를 상대로 로비가 치열했고 병원을 상대로 한 제약사의 리베이트가 횡행했다. 실거래가제는 병원이나 약국이 실제로 구매한 가격대로 신고해 약값을 건강보험공단에서 타 가는 제도다. 약가 마진과 리베이트가 여전했다. 병원들이 기준 금액 1000원짜리 약을 900원에 샀으면 그 가격대로 신고해 이윤을 챙기지 않아야 하는데 제약사와 짜고 1000원에 산 것으로 꾸며 건강보험 재정을 축낸 것이다. 명백한 불법인 데도 적발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복지부에 따르면 전체 약품의 99.5%가 이런 식으로 거래됐다.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병원이 약을 싸게 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는 이윤을 남길 수 없게 돼 있었다. 상거래 행위의 이윤 동기가 사라지면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복제약 가격 인하, 약가 재평가 등 갖가지 수단을 동원했지만 약발이 듣지 않았고 약제비가 매년 10% 이상 늘었다.

정부는 실거래가제 시행 직후인 2001년 무렵 이 제도의 문제점을 알았지만 10년 가까이 방치했다가 16일 약을 싸게 산 병원에 인센티브를 주는 ‘시장형 실거래가 상환제’로 틀을 바꾼 것이다. 정부는 10월부터 고시가격과 병·의원, 약국이 실제 구매한 가격의 차액 가운데 70%는 병·의원, 약국의 이윤이 되도록 해 나머지 30%만큼 환자의 약값 부담을 줄어들게 했다. 또 의사·약사가 제약사한테 리베이트를 받다 적발되면 형사 처벌(최고 1년 이하 징역 등)하고, 리베이트를 신고하면 최고 3억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한국제약협회는 성명에서 “새 제도는 제약업계의 무한 가격경쟁을 몰고 오고 수익을 악화시킨다”며 “이로 인해 연구개발 여력이 감소해 장기적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리베이트를 받는 의사나 약사를 처벌하려면 법을 바꿔야 하는데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의사나 약사 출신 의원이 6명 포진해 있다. 법률 개정안이 통과하지 못하면 ‘한 손’(제약사 제재)만으로 박수를 치는 꼴이 될 수 있다.

신성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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