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자민당 '부시 응원'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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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부시 파이팅."

일본 집권여당의 잇따른 '부시 응원'이 정치권에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야당은 "외교를 모르는 비상식적인 발언"이라며 당장 국회에서 문제를 제기할 태세다.

문제의 발언은 지난 14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의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나왔다.

미국 대통령 선거의 향배를 묻는 질문에 "(나는) 부시 대통령하고는 친하니까, 그가 파이팅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아가 TV토론 후 케리 후보가 우세하다는 여론조사에도 반론을 제기했다. "여론조사와 선거결과는 다른 경우가 많다. 결과를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부시의 재선을 원하고 있음을 거의 노골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여기에 자민당 서열 2위인 다케베 쓰토무(武部勤)간사장까지 가세했다.

프로그램에서 "부시 대통령이 아니면 곤란하다. 케리는 북한과 양국 간 협상을 하려고 하는데 이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에 따른 파문이 확산되자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관방장관이 나서 해명했다. "총리의 발언은 개인적인 견해일 뿐 누가 당선되든 미.일관계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언론과 국민의 시각은 싸늘하다. "다른 나라 선거를 앞두고 총리가 특정 후보의 당선을 기대하는 발언을 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내정간섭에 해당하는 '대실언'"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고이즈미 정권은 케리 후보에 대해서 "일본보다 중국을 우선시할 것" "북한과의 양자 협상으로 일본이 따돌림당할 것"이라는 경계심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번 발언은 케리 후보가 상승세를 타는 데 대한 일본 집권여당의 초조함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고이즈미 총리는 집권 초 자신의 개혁 의지를 선명히 하기 위해 "(수구세력인)자민당을 깨부숴 버리겠다"는 등의 직설화법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외교는 상황이 다르다. 부시가 재선에 성공하면야 모르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일본으로선 여러 면에서 현재 우려하는 것 이상의 낭패를 겪을 수도 있다. 지도자의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한다.

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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